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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경대학에서 백암 김륵선생 유적지를 다녀와서
2019. 6.16. 거경대학에서 3월 체험수련으로 100여명이 버스 2대와 승용차 2대로
봉화지역으로 떠나 처음으로 찾은 곳은 상운면에 있는 백암 김륵 신도비를 찾았다.
백암 김륵(柏巖 金玏 1546~1626)은 본관은 선성(宣城. 禮安)이고 자는 희옥(希玉),
시호는 민절공(敏公)으로 세종조 천문학자인 문절공 무송헌(撫松軒) 담(淡)의
현손이며 퇴계의 문인이다.
1576년(선조 9) 문과급제하여 승문원을 거쳐 홍문관 부수찬, 사헌부 지평,
성균관 직강 등 청환(淸宦)을 두루 재직중 친노봉양을 위해 외직을 원하니
1584년 신임군수 마다 죽는 변이 있었던 영월군수에 제수되었으며
도임 즉시 노산군 묘를 배알하고 제청과 재실, 찬청을 짓고 '노산군'이란
호칭을 신주에 써서 부인 송씨의 신위와 함께 모시어 변을 막았고
군내폐습십개조(郡內弊習十個條)를 소진(疏陳)하여 민심을 안정시켰다.
임진왜란때는 형조참의, 경상도관찰사겸 병마수군절도사, 순찰사를 지냈으며
1594년(선조27) 이조참판, 성균관 대사성, 사헌부 대사헌, 홍문과 부제학 등
사헌부, 사간원 양사의 일을 겸임하였고
1602년(선조35) 하절사(賀節使)로 명나라에 가서 왜구의 정세를 주달(奏達)하였다.
대사성이 되고 안동부사로 나가 1605년 낙동강의 재해를 막기위해 송제를 쌓앗던
공적은 선어대에 송제비에 기록이 전하고 있으며
김직제(金直哉)의 무옥(巫獄)에 연루되어 광해군의 생모인 공빈(恭嬪)김씨 별묘의
의물을 종묘의물과 똑같게 하는 것에 반대하여 강릉으로 유배가게 되었는데
여러 대신들의 변호로 풀려났으며 영천 구산서원에 제향되고 백암문집이 전하며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시호는 민절(民節)이다.
백암 김특선생의 신도비문은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이 찬하고
정숙공(靖肅公) 이익운(李益運 1748~1817)이 전자(篆字)로 쓰고
병산(甹山) 한치응(韓致應 1760~1824)이 글씨를 썼다고 한다.
백암 김륵 신도비 앞에서 이동수 원장으로부터 김륵선생의 일생에 대하여
설명을 들은후 우리는 석천계곡을 찾아갔다.
세상사 한마디
세상을 보고 싶은데로 보는 사람은
세상을 보이는데로 보는 사람을 이길수가 없다.
보이는 그대로 보고 내 인생을 살아가시길~~
대동루에서 본 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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