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기 - 살라망가의 대학가와 마요르 광장 탐방 (3/19) / 처음처럼 (34).
http://cafe.daum.net/123ad/9vTE/446
우리의 남유럽 여행도
이제 그 끝이 보인다.
나의 여행스켓치를 드나드시는 분들도
이젠 그저 나증이 나고 지루하실것이고
나또한 이제 적당히 지쳐가고 있으니. . .
우리 남유럽 여행도 이제
대륙의 서쪽끝 땅끝마을을 돌아서면서
다시 돌아가려고 스페인으로 되돌아 왔다.
이제 남은 여정은 오늘 돌아보는 살라망가 와
다음 돌아보게 되는 아빌라, 그리고 마드리드만 남았다.
살라망가는 마드리드로 돌아서면서 만나는
그리 멀지 않는 여정의 한곳인데
유서깊고 낭만적이며 아주 예술, 학문이 충만한 곳이란다.
제일먼저 우리는 회랑이 아름다운
아주 스페인 광장다운 마요르 광장을 들어섰다.
제일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시청사로 지었다는 전면의 그림이다.
알베르토 데 추리게라가 설계한 시청사가 아주 웅장하다.
처음에는 투우장으로 가끔 사용하기 위해 지은 이 광장은
스페인의 역대 왕들과 프랑코 장군의 큰 메달이
양쪽에 장식되어 있는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다.
비종교적 유적들로는
아치 중 15개가 로마 시대에 세워진 로마 시대의 다리,
거의 도시성벽 유적지로 되어 있는 토레델클라베로(1480경),
옛 산시프리안 교회의 폐허가 된 지하실에 있는
전설적인 살라망카 동굴,
벽이 가리비의 조가비로 만들어진 조각물과
탈레베나 말도나도 재상이 소유했던 무력에 의한
산티아고 칙령의 상징물로 뒤덮여 있는
16세기의 카사데라스콘차스 등이 있다.
스켓치 하느라 설명을 귀담아 듣지 못해 구별이 쉽지 않지만
이곳의 볼거리는 이곳 마요르 광장과
무엇보다 자랑거리인 이곳 살라망가 대학교와 두개의 큰 대성당이다.
1218 년에 세웠다는 이곳 대학교는 역사도 그러하지만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설계된
과학·철학·문학 등의 학부로 이루어진 콜레히오데아나야(1760~68)와,
기숙사가 딸린 옛 대학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콜레히오데폰세카(1527~78)가 있다한다.
콜레히오데폰세카는 반도전쟁(1808~14) 이후 아일랜드에 양도되어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 신학교로 사용되어
콜레히오데로스이를란데세스로 널리 알려졌다고하고....
법학부는 대학교에 인접해 있고,
새로 생긴 의학부는 강 서쪽 유역에 있다고 한다.
1950년대에 3개의 기숙대학이 이 도시에 설립되었는데,
스페인에서 이러한 형태의 교육기관은 처음이었단다.
지금 살라망가는 도시전체가 대학촌이라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옛 예수회 신학교(1617~1755)는
교황청립대학교가 되었으며,
라클레레시아 교회는 지금도 예수회의 예식처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다 살필수 없고 그냥 외양만 쳐다보고 있는데
살라망카대학교정문에 있는 조각에서 개구리를 찾으면
신입생들은 좋은 학점을 받을수 있다고하고,
이학교에 들어오고싶은 학생은
입학할수 있는 행운이 생긴다고하면서
이를 잘 찾아 보라고 한다.
우리 일행은 눈도 그리 밝지 못한대다가 마침
광선도 애매하게 빗겨 비추고 있어서 잘 찾기지 않는데
돌아와서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아주 잘 들어나 보인다.
살라망가 대학교에 시험을 쳐 볼까 ?
정말 좋은 학점이 나오고 입학할수 있는 행운이 생기는지 ?
대성당은 1140 년에 착공된 구, 대성당과
1513 년에 착공된 신, 대성당이 있는데
역시 이곳의 분위기가 잘 느껴지는 격을 갖춘 성당들이지만
하도 많은 성당을 돌아보고 있는 중이라
일행중에 불교신자가 많은편이고 또 나보고
관장 ! 이제 성당은 고만 보면 안되나 ?
이젠 성당 진절머리가 난다 !
다 그게그것같고 당최 구별도 안되는구먼. . .
나는 하는수 없이 일행을 따라 그저 광장 앞을 나서서
관광온 대학생들과 농을 나누며 함께 사진을 찍고 섰는
일행들을 흘겨보며 괜한 심술로 스켓치도 그만 두었다.
언젠가 로마 베드로 대성당앞에서
성당이 성당이지 나는 안 내릴란다 하고 버티던
관광 나온 아줌마가 생각이 난다.
그렇지 성당은 성당이지 !
이곳 성당에 계신 예수님이나
우리 안동의 소박한 성당에 계시는 예수님이나
다 같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이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