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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공 오선 권선생 기적비 수갈고유제 및 제막식.

아까돈보 2016. 4. 16. 21:38



의정공 오선 권선생 기적비 수갈고유제 및 제막식



4월 16일(음력 3월 초 10일) 안동시 북후면 모산미길(도촌리)에서

의정공(議政公) 오선(五先) 권선생(權先生) 기적비(記蹟碑) 건립

수갈고유(竪碣告由) 및 제막식(除幕式)이 친족(親族)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봉행(奉行)하였다.


참제(參祭) 분정(分定)은 초헌관(初獻官) 권오숭(權五崇), 아헌관

(亞獻官) 권종준(權鐘濬), 종헌관(終獻官) 권계동(權啓東), 축(祝)은

권기갑(權奇甲), 집례(執禮)는 권률(權률)이 담당하여 엄숙하게

봉행되었다.

만대헌(晩對軒)에서 수갈고유제 행사가 끝나자 참제원(參祭員)들은

이곳에서 100여m 가량 떨어진 기적비 앞에서 제막식을 가졌다.

이날 권기도의 사회에 따라 권오숭 기적비건립추진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바쁘신 가운데 원.근에서 참석하여 주어서 대단히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하고 "지금까지 기적비 건림 추진 과정에서

 물심양면으로 지원과 협조를 하여주신 관계자 여러분과 후손

 모두에게 고마운 인사를 드리며 또 이 사업을 시작한 이래

 3년 여 동안 많은 우려와 고충을 극복하고 마침내 완공을 보게

 되어 감개가 무량하다"며 감회에 젖기도 했다.


권오주는 기적비 건립 경과보고에서 "지난 2012년 6월 후손

10여 명이 기적비 건립을 결의하고 같은해 7월 취지문을

만들어 추진위원회를 구성, 사업을 착수한 이래 2년만인

2014년 6월 기적비 건립과 주변공사를 완공하고 그동안의

미진한 사업들을 보완하여 오다가 오늘 제막식을 갖게 되었다"고

 보고했다.

그는 기적비 건립과정에서 문중별 헌성금(獻誠金)이 3천1백10만원, 

175명의 개인별 헌성금이 6천7백50만원 등 총 9천8백60만원이

접수되었다고 보고했다.

경과보고가 끝나자 독비문(讀碑文)을 설명하고 비문의 글은

한국학술원 회원이며 서울대 명예교수인 김용직(金容稷)씨가

글을 짖고 김태균(金台均)씨가 글을 썼다.

헌성금을 낸 근족(近族)의 성명을  기록보존하기 위하여

오석(烏石)에 음각(陰刻)한 헌성록비(獻誠錄碑)를 좌대(座臺)로

만들어 기적비원(記蹟碑園)에 세워 놓았다.


제막식을 끝낸 헌관과 참제원들은 다시 만대헌이나 도계서원 앞

잔디밭에 삼삼오오 모여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헤어졌다.


의정공은 24세 때인 1472년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으나

 그 이상의 벼슬을 하지 않고 도계촌으로 와서 100여 년을

살았다.

슬하에 4남 1녀를 당세의 거목으로 길러내고 내외손(內外孫)

28명과 200여에 이르는 증현손(曾玄孫)을 번성케 함으로써

세인의 선망을 받아왔다.

안동권씨 도촌문중의 5백년 터전인 도계촌(道溪村)은 안동을

대표하는 씨족마을 중 하나로 명당의 형국을 잘 갖춘 곳이다.

의정공은 외조(外祖) 좌랑공(佐郞公) 정약(鄭若)이 있었던

이 터전에 살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540여 년간 안동권씨

씨족마을을 이루어 놓았다.








시도소(時到所).


의정공에 관한 책자.


도계서원(道溪書院).




만대헌(晩對獻 :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267호). 












수갈고유제의 헌관들.



만대헌 밖에도 참제원들이 서있다.


집례를 하고 있는 권률 찬자.





권오숭 초헌관.





축을 읽고있는 권기갑.


권종준 아헌관.


권계동 종헌관.






고유제를 마치고 제막식에 가는 헌관 및 참제원들.





헌성금(獻誠金)을 낸  근족(近族)의 이름을 음각한 헌성록비. (전면).


(후면).




권오숭 기적비건립추진위원장.


인사말을 하고있는 권오숭 위원장.




경과보고를 하고있는 권오주씨.


기적비 제막을 하고 있는 복야공파 문중대표들.







기적비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오른쪽 세번째분, 권기선 현 전국국학기공연협회장. 전 부산경찰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