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미끈유월은 미끄러지듯이 한 달이 지나간다는 말로, 해야 할 일이 많아 모르는 사이에 지나간다는 뜻이다. 옛날에 농사를 지으며 살 때는 보리도 수확해야 하고 모내기도 해야 하는 유월이 가장 바쁜 달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오뉴월 손님은 범보다 무섭고 유월 장마에는 돌도 쑥쑥 큰다.’고 했다. 누렇게 보리가 익어가는 들판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고 모내기 마친 논에서는 올챙이들이 다리 달고 개구리 옷 갈아입느라 바쁘다. 후텁지근한 날씨에 날개 접고 꽃무리에 앉은 나비 떼는 눅진한 바람결에 날갯짓이 무겁고 야산 밤나무 숲에서 흘러드는 비릿한 밤꽃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는 유월도 어느덧 중순을 넘어서고 있었다. 새내기 외국인 공무원 왕위 바쁜 유월, 새내기 안동시청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왕위(王?, 26세)를 취재하기 위해 퇴근시간을 한 시간여 앞당겼다. 편집기자와 함께 안동시청 시민회관 앞 벤치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자니 약속시간 5분 전에 훤칠한 키의 그녀가 나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너무도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녀의 단아한 모습에 절로 찬사가 나왔다. “어머! 왕위씨 너무 미인이세요. 양귀비로 유명한 중국에는 미인들이 많다는데 정말 예쁘세요!” “어머! 아니에요!”하며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는 것이 영락없는 새댁 모습이다. 6월부터 근무를 시작한 그녀에게 업무가 많아 바쁜 와중에도 취재에 응해줘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니, “아니에요. 바쁜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 저를 취재해주셔서 제가 오히려 감사를 드려야지요!”하며 예의바르게 다시 두 손을 모으고 인사를 한다. 1년 먼저 안동에 내려와 정착한 한국인 남편을 따라 그녀도 안동에 내려오게 됐다. 지난 5월 2일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린 왕위의 남편 서헌성(30세)씨는 현재 가톨릭상지대 어학원에 근무하고 있다. 6월 1일자로 발령을 받은 왕위는 곧 이사를 앞두고 있다. 남편이 살던 원룸에 임시로 거처를 두고 신혼집 꾸미기는 잠시 미루어 두었다. 결혼한지도 겨우 한 달이 지난 새댁이고, 안동시청 공무원으로 근무한지도 보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새내기 왕위씨는 모든 것이 어렵고 낯설지만 막힘없는 어학실력만큼이나 가정도 직장도 야무지게 잘 꾸려나갈 것 같아보였다. |
![]() 대한민국 임시정부였던 충칭에서 온 중국새댁 왕위의 고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던 충칭(중경)이다. 부모님의 소중한 무남독녀 외동딸 왕위는 가족 얘기가 나오자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듯 했다. “중국에 부모님이 계시고 제가 외동딸이라 형제는 없어요.” 중국은 자녀를 한 명만 낳고 더 낳을 경우 국가에 세금을 내야한다고 했다. 해서 왕위씨 부모님도 딸 하나만 키우게 되었다. “외동딸을 멀리 한국으로 시집보내서 부모님이 왕위씨를 많이 보고 싶어 하시겠어요.” “결혼 후에도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싶었는데 어머니 건강이 갑자기 나빠져서 함께 살지 못하게 되어 참 마음이 아파요.”한다. 결혼식은 시댁인 서울에서 치렀다. 어머니의 건강 때문에 친정 부모님은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 바로 중국으로 가서 친척들을 모시고 중국식으로 결혼식을 다시 올렸다고 한다. 남편과의 만남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연인 것 같아요! 남편이 제가 다니는 중국 동부사범대학교로 유학을 왔을 때 과외 교사로 처음 만났는데 이렇게 결혼까지 하게 되었어요!” 이후 왕위씨가 2006년 동국대 정치외교학교 교환학생으로 오면서 두 사람은 마침내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으며 사랑의 보금자리를 안동에 마련하게 되었다. 처음엔 단순한 과외 교사였는데 외국생활이 익숙하지 않은 남편을 도와주다가 답레로 ‘밥 한끼 같이 먹자’로 시작한 연애가 한평생 밥을 같이 먹게 된 사이로 발전한 것이다. 2개월차 신혼부부의 애칭은 바로 ‘뻔딴’이다. 바보라는 중국말이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기도 하지만 종종 ‘뻔딴’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한단다. 서울 남자와 충칭여자의 연애에 큰 애로사항은 없었다 한다. “남편과 연애를 시작하자마자 엄마한테 이야기했는데 엄마는 반대하지 않으셨어요. 하지만 아빠가 곱게 키운 딸을 외국으로 시집보내기가 안타까웠는지 처음에는 조금 망설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승낙해주셨어요.” 우리나라 아버지나 중국의 아버지들 마음은 다 같은가 보다. 곱게 키운 딸을 그것도 멀리 외국으로 시집보내려니 얼마나 마음이 쓰리고 안타까웠을까! 외동딸을 가까운 곳으로 시집보내면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달려가서 보고 했을 텐데 왕위씨 아버지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 |
![]() 공자께서 도우셨나봐요 왕위씨에게 안동은 오기 전과 와서 살아보니 어떤 느낌이 드는 도시인지 궁금했다. “처음에 안동을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해서 큰 도시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와서 보니 그리 큰 규모의 도시는 아니더군요. 하지만 작은 도시라 더 마음에 들었어요. 특히 안동 주변의 산과 들이 너무도 아름다워 더 사랑하게 되었어요.” 그녀의 안동인연이야 남편과 연결된 것이지만 안동시청 공무원이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정말 안동으로 오게 된 경위도 인연인 것 같아요! 중국에 살 때는 안동에서 공무원을 하며 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았거든요!” 왕위는 중국 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했는데 2006년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와서 1년 동안 한국학을 전공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 한국문화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공부하기 위해 지난해 연세대학교 한국학협동과정 대학원에 입학하여 석사과정을 공부하면서 유교사상을 공부하게 되었다. “유교사상이 어려웠지만 공자, 맹자, 주자, 퇴계이황선생을 공부하게 되었지요.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보고 한국학 교수님의 추천으로 오게 되었어요. 정말 공자께서 도우셨나봐요!” 안동문화와 유교사상을 현장 속에서 제대로 배우는데 안동시와 왕위의 궁합은 더할 나위 없이 잘 맞아떨어진 것이다. 게다가 중국에서도 공무원이 되는 일은 쉽지 않은 터라 친정부모님께서 무척 좋아하셨고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좋은 일엔 항상 ‘공자께서 도우셨나봐요.’를 외치는 이 젊은 중국 여인에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친근감이 들었다. 앞으로 안동시의 공무원으로서 역할과 포부도 남다를 그녀다. “안동을 중국에 많이 홍보해서 중국관광객들을 많이 오도록 해야겠지요. 중국관광객들이 한국에 와서도 서울시내 쇼핑이나 제주도, 경주까지는 관광을 다니는데 안동은 관광코스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요. 아직은 안동이 잘 알려져 있지 않거든요.” “중국관광객들을 안동으로 오게 할 수 있는 왕위 씨만의 대안이나 묘책이 있어요?” “중국은 공자를 성인으로 존경하고 있지요. 그런 만큼 유교문화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안동이라는 것을 홍보하면 가장 효과가 클 것 같아요. 그리고 안동의 자연 경치와 고택체험 등을 잘만 소개한다면 안동으로 관광을 많이 올 것 같아요!” 왕위는 도산서원 입구에 있는 공자의 후손 공덕성이 친필로 쓴 추로지향(鄒魯之鄕) 기념비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 추로지향이란 말은 공자가 노나라 사람이고 맹자가 추나라 사람인데서 유래된 말로 공자, 맹자와 같이 학문에 뛰어난 성현이 태어난 지역을 높여 부르는 말이며 도산서원의 추로지향 기념비는 공자의 77대 종손인 공덕성(孔德成) 박사가 도산서원을 방문, 알묘한 후 친필로 휘호한 내용이다. 그 공덕성이 2008년에 77세로 돌아가셨으며 장례식 때는 안동시청에서도 참가했다는 이야기를 그녀는 전해 주었다. 사투리는 억수로 힘드네요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안동생활 중 가장 어려운 점은 사투리라고 한다. 한국말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왕위에게도 사투리는 경험에 의해 익히게 되는 터라 아직 익숙하지 않다고 한다. 안동사투리 중에서 아는 것이 있는지 묻자 웃으면서 잠시 생각을 더듬는다. “억수로가 무슨 뜻인지 몰라 한참 헤매서 그런지 지금은 확실하게 알아요.” 업무 시작하면서 갖게 되는 문화적 차이점도 몇 가지 있다고 한다. “언어 자체가 중국어와 차이가 많이 나서 참 어려워요. 예를 들면 중국어는 존댓말 자체가 없는데 한국말은 존댓말뿐만 아니라 같은 뜻을 가진 낱말들이 너무도 다양해서 언어를 구사하는데 한계를 느낄 때가 많아요. 더군다나 그 많은 낱말들을 익혀서 글로 표현하기는 더 어려울 것 같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그리고 덧붙여 안동은 예의가 참 바른 것 같아 매사에 조심스럽다며 다시 두 손을 앞으로 여민다. 그녀가 시청에서 주로 하는 일은 중국에 안동을 홍보하는 일이다. “아직 얼마 되지 않아서 중국관광객 안내와 팸플릿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일을 해요. 출근한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게 어렵고 힘들지만 같은 부서 직원들이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특히 게이코 언니가 많이 도와주고 있어요.” 오가타 게이코는 2007년 본지에 ‘신안동인으로 소개도 되어 익히 잘 알고 있는 분이기도 하다. 일본인으로서 최초로 안동시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안동을 일본에 많이 소개 했고, 특히 일본관광객들을 유치하는데 그녀의 성과가 크다. 그리고 올해 5월 웅부공원에서 전통혼례로 안동남자 그것도 같은 시청 직원과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같은 부서 옆자리에 근무하고 있고, 언니처럼 잘 대해주고 있어요. 게이코 언니가 지난 몇 년간 근무하면서 일을 너무 잘해서 안동시장님을 비롯하여 모든 직원들이 저에게도 언니만큼의 기대를 하는 것 같아 잘할 수 있을지 부담스러워요!” 안동남자와 결혼한 외국인 새댁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그녀들이기에 ?은 시간에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옆에서 늘 마음 든든히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면서 왕위 씨도 게이코 씨처럼 중국관광객들을 많이 유치해서 안동시의 공무원으로 큰 업적을 남겼으면 하는 마음이다. 가을날의 병산서원, 잊지 못해요 “안동음식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있어요?” “네, 안동찜닭은 서울에 있을 때부터 좋아했는데 안동 와서 먹으니 더 맛있고요. 삼계탕도 좋아하고 안동의 모든 음식들이 입에 잘 맞아 다행이에요.”한다. “안동에서 가본 곳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은 어디였어요?” “도산서원, 하회마을, 병산서원, 봉정사를 가 봤는데 처음에 도산서원이 좋았는데 병산서원에 가보고 나서 병산서원이 더 좋아졌어요. 주변 풍광이 너무 아름답고 특히 가을의 병산서원이 가장 아름다운 것 같아요.” 이래저래 시작하는 것이 많은 그녀이기에 아직 특별히 즐기는 취미생활은 없다고 한다. “아직 업무 익히느라 취미생활은 꿈도 못 꾸고 있어요. 휴일 날은 남편과 함께 공부도 할 겸 해서 하회마을이나 도산서원 등 안동주변의 문화재나 관광지를 돌아봐요. 오가는 길에 음악을 크게 틀고 드라이브 하는 것이 취미라면 취미예요.” “한국 음식이나 안동 음식 중에서 잘 하는 것이 있다면 어떤 음식이에요?” 입을 막고 웃기만 하다가 자신 없게 말한다. “아직 잘 할 줄 몰라요. 주로 외식을 하거나 남편이 많이 해주는 편이에요.” 그러면서 신랑이 좋아하는 중국 음식은 가끔 요리할 때도 있다고 한다. 제삼선(地三鮮)이라는 요리인데 땅에서 나는 세 가지 신성한 야채(가지, 고추, 감자)를 튀겨서 먹는 음식이라고 자세하게 소개를 했다. “한국 남자, 특히 안동남자들은 참 무뚝뚝한데 왕위씨 남편은 어때요?” “네, 잘 해줘요. 무뚝뚝하지도 않고 설거지도 잘하고 집안 청소도 하고 잘 해줘요.”한다. 신랑 하나만 믿고 중국에서 안동까지 와서 사는 어여쁜 색시에게 무엇인들 해주지 못하겠는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가능하면 1남 1녀를 낳아 한국과 중국문화에 능통한 인재로 키우고 싶다는 왕위. 어릴 때 장래희망은 교사였다. 영어교사 자격증도 따고 열심히 공부한 그녀다. |
![]() 제2의 보금자리, 新안동인으로 살아갈께요 안동 생활이 오래 되진 않았지만 왕위씨의 안동사랑은 그 누구보다 뜨겁다. “안동은 사랑하는 남편과 결혼해서 첫 보금자리를 마련한 곳이기도 하고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도산서원 등 정신문화의 수도라는 역사와 아름다운 경치, 아늑한 분위기가 너무나 좋다.”며 안동예찬론을 펼쳤다. 안동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한족 중국인을 지방 계약직 공무원으로 임용하였다. 2003년에 전국에서 최초로 외국인 3명(영어, 일어. 중국어)을 지방계약직 공무원으로 채용해서 5년간 국내 관광객은 물론, 연간 10만 명의 외국관광객을 맞이하면서 수준 높은 통역과 우리의 우수한 문화와 전통을 세계 속에 널리 홍보하여 안동이 국제적인 문화관광도시로 성장 할 수 있는 성과를 일궈냈다. 자매도시 간 우호교류증진과 해외시장 개척시 전문통역, 시정홍보물 및 문화유적지 안내판 등을 외국인이 알기 쉽도록 정리하는 등 많은 분야에서 긍정적인 효과로 나타남에 따라 우리와 공동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는 한(漢)족을 채용하는데 있어 중국사람이면서 한국사람인 왕위씨의 활약이 기대된다. 왕위는 한국어는 물론 영어에도 능통하여 3개 국어 동시통역이 가능하다. 그녀의 첫 근무부서는 관광산업과. 공직사회 분위기를 익히면서 중국어 통역과 번역 등 주특기를 살린 업무를 하면서 일이 익숙해지면 중국 자매도시 상호 방문 때 통역이나 번역, 관련 문서 작성 등을 할 것이다. 또 안동 홍보물을 중국어로 제작하는 것은 물론 팸투어 등이 있을 때 현지 언론인들을 안내하는 것도 왕위씨의 몫이 될 전망이다. 왕위씨는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질 때까지도 조심스러워하며 겸손한 모습이었다. 그 나이 또래의 젊은이들보다 훨씬 더 진중한 모습의 그녀에게 무척 호감이 갔다. 퇴근 때면 남편과 만나 하루의 일과를 얘기하며 집으로 향한다는 이 중국새댁이 안동을 널리 알리는 외교사절로, 또 안동을 사랑하는 안동새댁으로 활기차게 생활해 나가길 기대해본다. <안동>
|
통권122호 - 新 안동인 |
'좋은글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만원짜리 개망신(김지하.시인) (0) | 2009.09.27 |
---|---|
사람을 알아보는 9가지 상식 (0) | 2009.08.18 |
박근혜 리더십의 마력 (0) | 2009.06.21 |
연꽃의 특징 (0) | 2009.06.09 |
아내를 감동시키는 말 (0) | 2009.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