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벤스 Rubens, Peter Paul [1577~1640]
플랑드르의 화가. 독일 베스트팔렌 지겐 출생. 아버지가 정치적인 이유로 지겐으로 피해 있을 때 그곳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죽자 10세 때 가족과 함께 고향인 안트베르펜으로 돌아와 라틴어 학교에 다녔다. 3년 뒤 14세에 랄랭 백작부인의 시동이 되어 귀족사회의 습속을 익혔고, 화가가 될 뜻을 세웠다. 15세 때 A.노르트(1562∼1641), O.베니우스(1556∼1629) 등에게 그림을 배운 뒤 21세 때인 1598년 당당히 안트베르펜화가조합에 등록되었고, 23세 때인 1600년에 이탈리아 유학의 꿈을 실현시켰다. 이탈리아에 머무는 8년 동안 베네치아 ·로마 등지에서 고대미술과 르네상스의 거장들의 작품을 연구하고 당시 이탈리아의 바로크화가인 M.카라바조와 카라치파(派)의 영향을 받아 장족의 발전을 이루어 차차 명성을 얻는 한편, 만토바공(公)의 인정을 받아 그의 사절로서 외교적 사명을 띠고 에스파냐로 여행하였다. 1608년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기별을 받고 고향에 왔을 때 이미 어머니가 운명한 뒤였으나, 그는 플랑드르 제일의 화가로서 고향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다. 1609년 플랑드르 총독 알브레흐트 대공의 궁정화가가 되었고, 10월에는 명문 집안의 딸 이사벨라 브란트와 결혼하였다. 그 뒤로는 날로 높아가는 명성과 많은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루벤스 특유의 화려하고 장대한 예술을 펼쳐나갔다. 역사화 ·종교화를 비롯하여 많은 종류의 제재를 작품화하였는데, 파리의 뤽상부르궁전의 21면으로 이루어진 연작 대벽화 《마리 드 메디시스의 생애》는 그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루벤스 예술의 모든 특질을 담고 있으며 바로크회화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현란한 그의 작품은 감각적이고 관능적이며 밝게 타오르는 듯한 색채와 웅대한 구도가 어울려 생기가 넘친다. 외교관으로서도 활약하였으며 원만하고 따뜻한 인품으로 말미암아 유럽 각국 왕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1626년 아내 이사벨라가 죽은 후, 1630년 16세의 엘레나 푸르망과 재혼하였다. 1640년 팔의 통풍이 심장에까지 번져 안트베르펜에서 죽었다.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레우키포스 딸의 약탈
이 작품의 특징은 X자를 형성하는 구도이다. 그러나 구성 요소들은 그 자태의 방향에 의해 원(圓)을 이루고 있다. 두 여인을 떠받치고 있는 남자는 땅 위에 쓰러지려고 하고 있는 여인을 향하고 있고, 또 그 여인은 말에 매달린 사랑의 상징 큐우핏의 머리를 돌리고 있으며, 그 방향은 레우키포스를 약탈하는 남자로 이어지고 있다. 이것을 바로크 예술 양식을 나타내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엉키고 있는 요소들은 생의 약동과 그 맥박의 연락이며, 루벤스는 이에 관능과 건강에 넘치는 육체미로 나타내 주고 있다. 여인들의 탄력있는 아름다운 살결은 거칠고 검은 색의 남자들의 피부와, 힘찬 근육에 윤기있는 말의 피부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림의 주제는 그리스 신화에 관계된다. 제우스 신(神)의 두 아들이 멧시나의 두 왕녀를 이탈하는 비극을 소재로 한 것이다The Rape of the Daughters of Leucippus, 1618, oil on canvas, Alte Pinakothek, Munich
스잔나 푸르망 The Straw Hat, approx. 1625, oil on panel, National Gallery, London.
이 작품은 '마리 드 메디치' 주제의 대작과 함께 루벤스의 걸작 중의 걸작이라고 알려져 있는 것이다. 원숙기에 해당되는 루벤스는 부인 이사벨라의 친척 관계의 여인을 모델로 하고 또 기타 작품에도 등장 시켰다. 이 작품은 한편 <밀짚 모자의 여인>이라는 명제로 불리우고 있으나, 사실은 융단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초상화가 루벤스의 걸작으로 알려져 있는 이유는 모델의 여인이 작가의 이상형을 나타내는 여인이었다는 것과, 여기에 루벤스의 성숙한 예술성이 투입되었다는 점이다. 젊음과 건강이 넘치는 여성상은, 밝고 맑은 눈동자와 표정, 풍부한 몸매를 시사하는 앞가슴 등으로 표상되고 있다. 청아한 여인상을 표현하는 루벤스의 예술은 맑은 청색의 배경과 빨간색, 검은색, 흰색으로 이루어진, 단순하고 또 화합되는 색조를 이용한 색채관으로 격조를 높이고 있다
毛皮(모피)를 걸친 헬레네 푸르망
루벤스는 두 번째의 처 헬레네를 자신의 원숙한 기량으로 기념비적인 미로 만들고 있다. 이것은 사적인물(史的人物), 사적사건(史的事件)을 '마리 드 메디치'의 주제 작품으로 집체화하여 자신의 예술을 결정체로 하였듯이, 여인상, 여체미를 이 작품을 통하여 완결짓고 있는 셈이다. 모피의 여인이라는 구상은 티지아노 작품에서 얻은 것으로 생각되고, 여인의 아름다움은 헬레네로 표상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심경은 루벤스가 이 작품을 마음으로 새긴 것으로, 헬레네에게 주는 작품이라고 그의 유언장에 기록된 사실로도 알 수 있다. 그녀 또한 루벤스 사후의 재혼 생활 속에서도 이 작품을 계속 간직하고 있었다 한다. 인물 위주의 이 전신상은 배경, 의상 등이 짙은 어둠의 단일한 색조로 되어, 밝은 살색과 대조되어 모든 장식성을 배제하고 있다. 살색 중심의 작품이다.
The Little Fur (Hélène Fourment), after 1635, oil on wood, Art History Museum, Vienna
파리스의 심판 The Judgement of Paris, 1635-38, The National Gallery of Art, Washtington D.C. |
삼미신
Roman Charity, 1612, oil on canvas transferred from panel, The Hermitage, St. Petersb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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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입은 남자
P.P 루벤스 그림. 17세기 초. 색분필 소묘. 23.4 ×38.7cm. 이 작품의 모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루벤스가 생존할 당시인 1600년경 이탈리아에 건너간 한국인은 임진왜란 때 포로로 일본에 끌려갔다가 카를레티라는 이탈리아 상인에게 팔려간 안토니오 코레아밖에 없으므로 그였을 가능성이 높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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