姓氏의 故鄕

江陵 段氏(강릉단씨)(8).

아까돈보 2010. 3. 9. 21:05

 

 


.江陵段氏(강릉단씨)
 
由來
 

始祖 : 段干木(단간목)


始祖 段干木은 牟梁部(모양부), (只今의 慶州)사람으로 高麗 忠烈王 때 版圖判書를 지낸 분이다.段干木의 아들 段弘仁이 高麗 忠肅王 때 武科 宣傳官을 지냈다는 記錄뿐,3世와 4世는 알려진 바 없고 5世 段由仁이 朝鮮 成宗 때 孟山縣監을 지냄으로써 그를 中祖로 삼았다고 한다.
 

▣ 人物

 

  中始祖인 段由仁이 成宗 때에 承仕郞과 孟山縣監을 지냈을 뿐 아니라 當代의 碩學花潭徐敬德과 同門修學을 할만큼 빼어난 人物이었다.
그리고 9世孫인 段碩哲이 學德이 높았다는 記錄과 그의 아우인 段孝哲이 肅宗 때 武科에 올랐다.
그러나 時代를 거슬러 百濟時代로 올라가면 15代 武寧王 때 段楊再가 五經博士로서 日本에서 活躍했다.
 

▣ 科擧及弟者(朝鮮時代)

 

  段宇柱, 1875年 乙亥生) : 司馬試 高宗28年(1891) 增廣試三等
* 모두 1名의 科擧 及弟者가 있다.
(司馬試 1명)


▣ 世居地(代代로 내려오며 살고 있는 고장)

 

  段干木 以後 江陵에서 數百年을 살았다. 그리고 中始祖인 段由仁은 燕山君 甲子士禍 때 禍를 避하여 中央에서 다시 江陵으로 落鄕하였다.
그뒤 世居地가 一部 忠淸道 洪城地方으로 옮겨진 듯하다.18世孫대(1896年代 高宗年間)까지의 墓塋이 洪城郡 洪北面 大仁里 世葬山으로 되어 있음을 미루어 봐도 그런 推測이 可能하다.

 

▣ 族譜發刊

 

  - 辛亥譜(신해보), 1971)
 

▣ 本貫沿革

 

 

本貫所在地 : 江原道 江陵


江陵은 紀元前부터 城邑國家인 濊貊族(예맥족)의 濊國(예국)이 있던 地域으로 127年 以後에는 滄海(창해)와 臨屯(임둔)에 屬하였다. 313年(高句麗 美天王14)에 河西良(하서량) 또는 河瑟羅(하슬라)라 불리었다.550年(新羅 眞興王11) 新羅의 領土로 編入되었고,639年(善德女王8)2月에는 北小京을 두었고,658年(武烈王5) 靺鞨族과 隣接해 있다는 理由로 小京을 廢止하고 河西州로 改編하여 都督을 두었다.757年(景德王16)溟州(명주)로 改編하여 溟州都督府(명주도독부)를 두었고 9郡 25縣을 管割하였다. 936年(高麗 太祖19)에는 東原京이라 稱하고 臨瀛館(임영관)을 두었다.그 後羽谿(우계)·連谷의 두 縣을 두었다가, 1260年(元宗1) 功臣 金洪就의 故鄕이라하여 慶興都護府(경흥도호부)로 昇格되었다. 1389年(恭讓王1)에는 江陵大都護府(강릉대도호부)가 設置되었다. 1789年(正祖12)에 江陵府가 되었다. 1896年(高宗33) 江陵郡으로 改稱하였다.1931年 江陵面이 江陵邑으로 昇格되었고,1955年 江陵邑·城德面·鏡浦面을 統廢合하여 江陵市로 昇格하면서 溟州郡을 分離시켰다가 1995年 江陵市와 溟州郡을 江陵市로 統合하였다. 
 

▣ 人口數

 

  統計廳의 人口調査에 依하면 江陵段氏는
1985年에는 總 13家口 51名,
2000年에는 總 60家口 179名이 있는 것으로 調査되었다.

 

2009.  11.  8. 伍民 轉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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