姓氏의 故鄕

晉州 邢氏(진주형씨) (83).

아까돈보 2010. 3. 13. 16:14

 

 

 

 晋州邢氏(진주형씨)
 

▣ 由來

 

 

始祖 : 邢顒(형옹)


始祖 邢顒(형옹)은 唐나라 太宗 때 사람으로 高句麗 영류왕 17년에 榮留王의 要請으로 唐나라에서 派遣한 8學士 中의 한사람으로 高句麗에 들어와 唐나라 文化, 文學, 儒敎 補給에 貢獻하고 三中大匡(삼중대광)을 지냈으며 南陽의 官籍을 下賜 받았다. 그後 그의 16世孫邢公美(형공미)가 文科에 及弟하여 左僕射(좌복야), 門下侍中 等을 지내고, 1280年(忠烈王 6년) 都元帥가 되어 日本 일기도에서 倭軍을 征伐하는데 功을 세워 智密直司事(지밀직사사)로 一等功臣에 冊錄되고 晋陽君에 封해 졌으므로, 後孫들은 그의 할아버지 邢昉(형방)을 1世祖로 하고 本貫을 晉州(반성)로 하였다.
 

科擧及弟者(朝鮮時代) 

 

  邢孝甲(형효갑) (1571 辛未生) : 文科 光海君8年(1616) 別試丙科
邢士保(형사보) (1571 辛未生) : 文科 中宗17年(1522) 式年試 丙科
邢孝甲(형효갑) (1571 辛未生) : 司馬試光海君2年(1610) 式年試 三等
邢士哲(형사철) (1571 辛未生) : 司馬試燕山君10年(1504)式年試三等
等 모두 4名의 科擧及弟者가 있다.
(文科 2명, 司馬試 2名)

行列字(항렬자)
 
35世
종(鍾)○
시(時)○
36世
○욱(旭)
○구(九)
37世
남(南)○
38世
○우(宇)
39世
성(成)○
40世
○희(熙)
41世
강(康)○
42世
○재(宰)
43世
정(廷)○
44世
○규(揆)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36世孫은 35代孫)
 

▣ 本貫 沿革

 

   本貫所在地 : 慶尙南道 晉州
  

晉州은 慶尙南道 南西쪽에 位置한 地名으로 本來 三韓時代에 小國인 古淳是國(고순시국)이 있었던 곳이다. 百濟의 居烈城(거열성)이었고, 新羅 文武王 때 新羅의 領土가 되어 居烈州(거열주)라 불리었으며,757年(新羅景德王16) 九州五小京制(구주오소경제)의 實施와 함께 康州都督府(강주도독부)로 고쳤다가, 惠恭王 때 菁州(청주)로 改稱되었다.

高麗初에 康州(강주)로 還元되었다.983年(成宗2)全國에 12牧을 둘 때 晉州牧이 되었다.995年(成宗14)에는 定海軍(정해군)이라 하고 節度使(절도사)를 두어 山南道(산남도)에 屬하게 하였다.1012年에 按撫使(안무사)로 고쳤다가,1018年(顯宗 9)에 晉州牧으로 復舊되었다.1310年(忠宣王2)에 晉州로 降等되었다가 1356年(恭愍王 5)에 다시 晉州牧으로 回復되었다.1392年(太祖1)에 晉陽大都護府(진양대도호부)가 되었다가 1402年(太宗 2)에 晉州목으로 還元되어 朝鮮時代 동안 維持되었다.1895年(高宗 32) 地方制度 改正으로 晉州府 晉州郡이 되었다가, 1896年에 13道制 實施로 慶尙南道 晉州郡이 되었다.1931年에 晉州面이 邑으로 昇格하였다.1939年 晉州邑이 市로 昇格하면서 나머지地域이 晉陽郡으로 改稱되었으며,1995年 晉陽郡이 晉州市에 統合되었다.

▣人口數

 

 

統計廳의 人口調査에 依하면 晉州邢氏는
1985年에는 總 1,226家口 5,145名,
2000年에는 總 1,820家口 5,822名이 있는 것으로 調査되었다.

 

2010.  1.  13. 伍民  轉寫

 

 

'姓氏의 故鄕' 카테고리의 다른 글

羅州 扈氏(나주호씨) (85).  (0) 2010.03.13
長興 邢氏(장흥형씨) (84).  (0) 2010.03.13
川寧 玄氏(천녕현씨) (82).  (0) 2010.03.13
昌原 玄氏(창원현씨) (81).  (0) 2010.03.13
驪州 玄氏(여주현씨) (80).  (0) 2010.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