姓氏의 故鄕

淳昌 邕氏(순창옹씨) (211).

아까돈보 2010. 3. 22. 00:50

 

 

 
 淳昌邕氏(순창옹씨)
 

▣ 由來

 

 

始祖 : 邕夢辰(옹몽진)


高麗時代(고려시대)에 兵部尙書(병부상서)를 지낸 邕羲泰)(옹희태)를 祖(비조)로 하여 邕慶星(옹경성), 邕義星(옹의성), 邕命廷(옹명정) 等(등) 여러 上系 祖上(상계조상)들이 朝鮮(조선)의開國(개국)때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隱遁(은거)하거나 姓(성)을 감추고있다가 肖山(지금의 井邑)으로 流配(유배)되었다가 다시 沃川(옥천)의 鄕里9향리)로 降屬(강속)되었다고 한다.이러한 가운데 모든 家乘(가승)과 宗籍(종적)이 失傳(실전)되었다고 한다.

始祖(시조) 邕夢辰(옹몽진)은 邕太云(옹태운)의 아들로 1553年(明宗8年) 親慶別試(친경별시)文科(문과)에 兵科(병과)로 及弟(급제)하고 陰城縣監(음성현감)을 歷任(역임)하고 忠淸道事(충청도사), 刑曺左郞(형조좌랑), 禮曺左郞(예조좌랑), 兵曺正郞을 거쳐 嘉善大夫同知中樞府使(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에 이르러 집안을 다시 세우면서 邕夢辰(옹몽진)의 曾祖父(증조부)이신 邕誾(옹은)을 1世로 하고 있다.

 

▣ 科擧及弟者(朝鮮時代)

 

  邕夢辰(옹몽진) : 文科 명종11년(1556) 重試 丙科
邕夢辰(옹몽진) : 文科 명종8년(1553) 別試 丙科
邕熙益(옹희익) (1631 辛未生) : 武科 孝宗2年(1651) 別試 丙科
邕景祐(옹경우) (1566 丙寅生) : 司馬試 仁祖2年(1624) 式年試 二等
邕守欽(옹수흠) (1531 辛卯生) : 司馬試 明宗13年(1558) 式年試 二等
邕殷弼(옹은필) (1531 辛卯生) : 司馬試 中宗35年(1540) 式年試 三等
등 모두 6名의 科擧 及弟者가 있다.
(文科 2名, 武科 1名, 司馬試 3名)


▣ 族譜發刊

 

  - 己巳譜(1629年, 仁祖 7年)
 

▣ 本貫 沿革

 

 

本貫所在地 : 全羅北道 淳昌


淳昌(순창)은 全羅北道(전라북도) 南(남)쪽 中央(중앙)에 位置(위치)하는 地名(지명)이다.原來(원래)는 百濟(백제)의 道實郡(도실군)인데,新羅(신라)가 三國(삼국)을 統一(통일)한 後(후)757年(景德王16) 淳化郡(순화군)으로 고쳐 赤城縣(적성현)·九皐縣(구고현)을 領縣(영현)으로 管割(관할)하게 되었다.940年(高麗 太宗23) 淳昌(순창:淳州)으로 이름을 고쳐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1018年(顯宗 9) 南原(남원)의 屬縣(현감)으로 倂合(병합)되었다가 1175年(明宗 5) 監務(감무)를 設置(설치)함으로써 獨立(독립)하였다.1314年(忠肅王 1)에 國師(국사)인 丁午禪師(정오선사)의 故鄕(고향)이라 하여 郡(군)으로 昇格(승격)되어 朝鮮時代(조선시대)에도 이어졌다.朝鮮初(조선초)에서도 繼屬(계속)淳昌郡(순창군)으로 南原府(남원부)에 屬(속)하였다. 1895年(高宗 32) 地方制度改正(지방제도개정)으로 南原府(남원부)에서 獨立(독립)하였고, 1896年 道制實施(도제실시)로 全羅北道(전라북도)에 所屬(소속)되었다.1914年郡面廢合(군면폐합)으로 任實郡(임실군)과 南原郡(남원군)의 一部(일부)가 編入(편입)되었다.1935年 龜巖面(구암면)과 茂林面(무림면)을 統合(통합)하여 龜林面9구림면)으로 改編(개편), 11個面(개면)이 되었다. 1979年淳昌面(순창면)이 邑(읍)으로 昇格(승격)되었다.
 

▣ 人口數

 

 

統計廳(통계청)의 人口調査(인구조사)에 依(의)하면 淳昌邕氏(순창옹씨)
1985年에는 總 56家口 271名,
2000年에는 總 105家口 353名이 있는 것으로 調査(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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