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조선) 世祖(세조)때 通訓大夫(통훈대부)로 平市署令(평시서령)을 지낸 孫安懋(손안무)의 세째 아들 孫庠(손상)은 牧民官(목민관)에 있을 때 善政(선정)을 베풀고 兵曹參判(병조참판)에 追贈(추증)되었으며,孫安懋(손안무)의 孫子(
손자)로 大司成(대서성)을 지낸 孫湜(손식)과 文科(문과)에 及第(급제)하고 都事(도사)를 歷任(역임)한 孫祚(손조) 兄弟(형제)가 有名(유명)했다. 한편 蔭官(음관)으로 副司直(부사직)에 올랐던 孫承烈(손승렬)의 아들 孫節(손절)은 箕子殿參奉(기자전참봉)을 지냈으며, 孫承烈(손승렬)의 曾孫(증손) 孫胤業(손윤업)은 일찍이 高應擎(고응경)의 門下(문하) 에서 學文(학문)을 닦고 1612年(光海君4年) 司馬試(사마시)에 合格(합격)하여 西厓(서애) 柳成龍(류성룡)의 門下生(문하생)인 愚伏(우복) 鄭經世(정경세),蒼石(창석) 李埈(이준)等(등)과 함께 道義(도의)를 交流(교류)하며 禮學(예학)을 講論(강론)하여 크게 文名(문명)을 떨쳤다. 孫允業(손윤업)의 둘째 아들 孫啓昌(손계창)이 奉烈大夫(봉렬대부)로 通禮院相禮(통례원상례)에,셋째 孫以昌(손이창)은 通政大夫(통정대부)로 戶曹參議(호조참의)에 各各(각각) 追贈(추증)되어 家勢(가세)를 일으켰다. 그 外(외) 孫翼振[손익진: 孫克昌(손극창)의 玄孫(현손)]의 아들 孫興祖(손흥조)가 純祖(순조)때 庭試文科(정시문과)에 及第(급제)한 後(후) 承文院副正字(승문원부정자)와 司諫院正言(사간원정언)에 이르러 벼슬을 辭任(사임)하고 故鄕(고향)으로 돌아와 立齋(입재)鄭宗魯(정종로),龜窩(귀와) 金宏(김굉)等(등)과 더불어 禮學(예학)을 講論(강론)하며 餘生(여생)을 보냈고,通德郞(통덕랑) 孫德恒(손덕항)은 孝行(효행)으로 이름을 떨쳐 家門(가문)을 더욱 빛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