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배려와 관심 감사합니다.
사진을 보니 젊으신 분 같군요. 저는 꼬꼬할비입니다. 병술생이니 제 나이 짐작 가시지요. 저는 많은 생각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짧은 지식의 매우 단조로운 외곬의 성격입니다. 우리 문중에 대한 홍보가 않되어 먼저 만들어진 자료가 온세상에 떠돌고있어서 열을 받은 후 블로그를 열고 억지로 억지로 자료를 올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늘 생각하는게 누가 내글을 보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해오면 어떡하나 걱정도 많이합니다. 그래서 아까돔보님께 수고를 끼치고싶은 의도는 전혀없습니다만 문제는 "보성선씨" 검색어에 선생님의 자료가 튀어나온다는 점입니다. 우리 계열이 인구가 너무 적기때문에 인구 많은쪽 위주로 자료가 씌인다해도 할 말은 없습니다만 아무리 사소하다해도 정통성에 대한 부분은 서로가 존중해줘야한다 생각합니다.
선생님께 제가 하나의 안을 드립니다.
우리나라의 성씨에 대하여는(모든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연구. 관찰 내용을 존중해야한다 생각합니다. 박사님들이 노력하고 고민하여 내보낸 자료이니깐요. 참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보성선씨 자료는 옆 주소( http://people.aks.ac.kr/front/tabCon/lst/lstView.aks?lstId=LST_108_212_0214&isEQ=false&kristalSearchArea=false)에 있습니다. 그냥 "한국학중앙연구원" 검색하시어 찾아보셔도 되구요.
거기에 나타난 자료는 아래와 같습니다. 판단과 글쓰기.지우기는 전적으로 선생님께서 하실일이기에 복사하여 보내는것으로 댓글쓰기를 마칩니다. 그동안 페를끼친것 같군요/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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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연의 자료
[요약정보]본관명 보성(寶城)
성씨명 선씨(宣氏)
본관소재지 전라남도(全羅南道) 보성군(寶城郡)
본관이칭
시조명 선용신(宣用臣), 선윤지(宣允祉)
[상세내용]본관 연혁
보성(寶城)은 전라남도 남부 중앙에 위치한 보성군(寶城郡) 지역의 옛 지명으로 마한 54국 중 불운국(不雲國)이었다고 한다. 백제 때에는 복홀군(伏忽郡)이라 불렸고,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보성군(寶城郡)으로 개칭되어 현재까지 쓰이고 있다. 고려 태조는 산양군(山陽郡)이라 하였으며, 996년(성종 15)에 패주(貝州)로 고쳤다가 1018년(현종 9)에 다시 보성군(寶城郡)이 되었다. 1441년(세종 23)에 조양현(兆陽縣)과 복성현(福城縣)을 제외한 대부분의 속현이 흥양현으로 이속되어 면적이 크게 축소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 보성군, 1896년에 전라남도 보성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권역이 다시 확대되었고 1941년에 보성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성씨의 역사
보성선씨는 보성(寶城)을 단일본으로 하지만, 선용신(宣用臣)을 시조로 하는 조도계열과 선윤지(宣允祉)를 시조로 하는 갈몰계열로 나뉘어 있다.
선용신은 고려 고종때의 인물로 여진을 정벌하는 공을 세워 패주군(貝州君:패주는 보성의 옛이름)에 봉해젔다고 한다.
선윤지(宣允祉)는 고려 우왕때의 인물로 호남안렴사(湖南按廉使)로 있으면서 전라도 해안 지방에 넘나드는 왜구를 소탕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는 공을 세웠으며,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보성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갈몰계의 선윤지는 조도계 선용신의 후손인 선원지와 형제이며 따라서 두 계열은 뿌리가 같다는 주장도 있다.
주요 세거지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
전라남도 보성군 웅치면 중산리
전라남도 보성군 보성읍 봉산리
전라남도 보성군 조성면 매현리
전라남도 보성군 조성면 봉능리
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
인구분포
2010년 통계청 인구 자료에 의하면 보성선씨는 1만 2,094가구에 인구는 3만 8,849명이다
사진을 보니 젊으신 분 같군요. 저는 꼬꼬할비입니다. 병술생이니 제 나이 짐작 가시지요. 저는 많은 생각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짧은 지식의 매우 단조로운 외곬의 성격입니다. 우리 문중에 대한 홍보가 않되어 먼저 만들어진 자료가 온세상에 떠돌고있어서 열을 받은 후 블로그를 열고 억지로 억지로 자료를 올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늘 생각하는게 누가 내글을 보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해오면 어떡하나 걱정도 많이합니다. 그래서 아까돔보님께 수고를 끼치고싶은 의도는 전혀없습니다만 문제는 "보성선씨" 검색어에 선생님의 자료가 튀어나온다는 점입니다. 우리 계열이 인구가 너무 적기때문에 인구 많은쪽 위주로 자료가 씌인다해도 할 말은 없습니다만 아무리 사소하다해도 정통성에 대한 부분은 서로가 존중해줘야한다 생각합니다.
선생님께 제가 하나의 안을 드립니다.
우리나라의 성씨에 대하여는(모든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연구. 관찰 내용을 존중해야한다 생각합니다. 박사님들이 노력하고 고민하여 내보낸 자료이니깐요. 참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보성선씨 자료는 옆 주소( http://people.aks.ac.kr/front/tabCon/lst/lstView.aks?lstId=LST_108_212_0214&isEQ=false&kristalSearchArea=false)에 있습니다. 그냥 "한국학중앙연구원" 검색하시어 찾아보셔도 되구요.
거기에 나타난 자료는 아래와 같습니다. 판단과 글쓰기.지우기는 전적으로 선생님께서 하실일이기에 복사하여 보내는것으로 댓글쓰기를 마칩니다. 그동안 페를끼친것 같군요/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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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연의 자료
[요약정보]본관명 보성(寶城)
성씨명 선씨(宣氏)
본관소재지 전라남도(全羅南道) 보성군(寶城郡)
본관이칭
시조명 선용신(宣用臣), 선윤지(宣允祉)
[상세내용]본관 연혁
보성(寶城)은 전라남도 남부 중앙에 위치한 보성군(寶城郡) 지역의 옛 지명으로 마한 54국 중 불운국(不雲國)이었다고 한다. 백제 때에는 복홀군(伏忽郡)이라 불렸고,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보성군(寶城郡)으로 개칭되어 현재까지 쓰이고 있다. 고려 태조는 산양군(山陽郡)이라 하였으며, 996년(성종 15)에 패주(貝州)로 고쳤다가 1018년(현종 9)에 다시 보성군(寶城郡)이 되었다. 1441년(세종 23)에 조양현(兆陽縣)과 복성현(福城縣)을 제외한 대부분의 속현이 흥양현으로 이속되어 면적이 크게 축소되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나주부 보성군, 1896년에 전라남도 보성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권역이 다시 확대되었고 1941년에 보성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성씨의 역사
보성선씨는 보성(寶城)을 단일본으로 하지만, 선용신(宣用臣)을 시조로 하는 조도계열과 선윤지(宣允祉)를 시조로 하는 갈몰계열로 나뉘어 있다.
선용신은 고려 고종때의 인물로 여진을 정벌하는 공을 세워 패주군(貝州君:패주는 보성의 옛이름)에 봉해젔다고 한다.
선윤지(宣允祉)는 고려 우왕때의 인물로 호남안렴사(湖南按廉使)로 있으면서 전라도 해안 지방에 넘나드는 왜구를 소탕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는 공을 세웠으며,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보성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갈몰계의 선윤지는 조도계 선용신의 후손인 선원지와 형제이며 따라서 두 계열은 뿌리가 같다는 주장도 있다.
주요 세거지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
전라남도 보성군 웅치면 중산리
전라남도 보성군 보성읍 봉산리
전라남도 보성군 조성면 매현리
전라남도 보성군 조성면 봉능리
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
인구분포
2010년 통계청 인구 자료에 의하면 보성선씨는 1만 2,094가구에 인구는 3만 8,849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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