姓氏의 故鄕

西京 鄭氏(서경정씨) (617).

아까돈보 2010. 10. 14. 08:40

 

 

 
 西京鄭氏(서경정씨)
 

▣ 由來

 

 

始祖 : 鄭知常(정지상)


始祖(시조)鄭知常(정지상)은 高麗(고려)睿宗(예종) 9年文科(문과)에 及第(급제)하고 1127年(仁祖5)左正言(좌정언)으로 拓俊京(척준경)을 彈劾(탄핵)하여 流配(유배)케 했으며,1129年 左司諫(좌사간)으로서 尹彦(윤언)等(등)과 함께 時政(시정)의 得失(득실)을 論(론)하는 上疏(상소)를 올렸다.
妙淸(묘청),白壽翰(백수한)의 陰陽秘術(음양비술)을 깊이 믿어 한때는 세 사람을 三聖(삼성)이라 稱(칭)했으며,都邑(도읍)을 西京(서경)으로 옮길 것과 北(북)쪽의 金(금) 나라 征伐(정벌)하고 高麗(고려)의 王(왕)을 皇帝(황제)로 稱(칭)할

것을 主張(주장)하였다.1130年 知制誥(지제고)로서 王命(왕명)을 받아 郭輿(곽여)를 爲(위)해 "山齊記(산재기)"를 지었으며, 그 後(후) 起居郞(기거랑)이 되었다.妙淸(묘청)의 亂(란)때 金富軾(김부식)에 依(의)해 殺害(살해) 當(당)했다.
易學(역학)과 詩(시),書(서),畵(화)에도 뛰어나고 老莊哲學(노장철학)에 造詣(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 人物

 

鄭應麟(정응린)은 朝鮮(조선) 中宗(중종)5年 文科(문과)에 及第(급제)하여 郡守(군수),持平(지평),掌令(장령),同副承旨(동부승지), 大司諫(대사간)等(등)을 거쳐 富平府使(부평부사)를 지냈다.

 

▣ 人口數

 

 

統計廳(통계청)의 人口調査(인구조사)에 依(의)하면 西京鄭氏(서경정씨)는
1985年에는 摠 65家口 307名,
2000年에는 摠 104家口 265名이 있는 것으로 調査(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