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通川崔氏(통천최씨)는 高麗朝(고려조)에 同正(동정)을 지낸 崔卓(최탁)을 비롯하여 上將軍(상장군)을 지낸 崔侑(최유),三軍府事(삼군부사)를 지낸 崔雲海(최운해)等(등) 여러 官職者(관직자)들을 輩出(배출)하면서 繁榮(번영) 하였다. -崔雲海(최운해):아버지의 戰功(전공)으로 恭愍王(공민왕)때 忠男衛散員(충남위산원)에 起用(기용),여러번 倭寇(왜구)를 擊退(격퇴)하여 典法判書(전법판서),忠州(충주)와 全州(전주)의 牧使(목사)를 거쳐 密直副事(밀직부사)에 이르러 忠勤左命功臣(충근좌명공신)의 號(호)를 받았다.이어 楊廣道節制使(양광도절제사) 兼(겸) 判廣州牧事(판광주목사)로서 戰功(전공)을 세웠고,
1388年 全羅道副元帥(전라도부원수)로서 遼東征伐(요동정벌)때 曺敏修(조민 수)의 幕下(막하)로 出征(출정),1392年朝鮮(조선)이 開國(개국)되자,開國原從功臣(개국원종공신)이 되고 이듬해 門下平吏(문하평리)로서 楊廣道節制使(양광도절제사)가 되어 朴威(박위)와 함께 倭寇(외구)를 擊破(격파)하였다. - 崔潤德(최윤덕) :朝鮮時代(조선시대)의 人物(인물)로,1410年 武科(무과)에 及第(급제)하고 上護軍(상호군),東北面助戰兵馬使(동북면조전병마사)가 되고, 다음해 右軍同知摠裁(우군동지총제)를 거쳐 1413年 鏡城等處節制使(경성등처철제사)로 나아가 티무르를 服屬(복속)시킴으로써野人(야인)들의 蠢動(준동)을 막았으며, 1419年議政府參贊(의정부참찬)으로서 三軍都統使(삼군도통사)가 되어 對馬島(댐마도)를 征伐(정벌)하고,1421年工曺判書(공조판서)가 되어 正朝使(정조사)로 明(명)나라에 다녀왔다.그는 1435年左議政(좌의정)으로 昇進(승진), 1445年에는 机杖(궤장)을 下賜(하사)받았다. - 崔笠(최립):1561年 式年文科(식년문과)에 壯元(장원)하여 여러 外職(외직)을 지낸 뒤 1581年 載寧郡守(재령군수)로 있으면서 貧民救濟(빈민구제)에 힘썼고,壬辰倭亂(임진왜란)때는 外交文書(외교문서)를 作成(작성)하는데 他(타)의 追從(추종)을 不許(불허)하여 松都三節(송도삼절)의 한사람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