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26대 국왕. 고종황제의 아버지 흥성대원군의 초상화◇
봄비 봄바람에 아름다운 얼굴 씻고
신선의 섬 한 번 떠나 인간의 세상에 왔네.
끝내 지기(知己)를 찾지 못하면
검은 화분 깨버리고 다시 산으로 돌아가리라.
판교의 시를 쓰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난 그림을 처음 시작하던 30세 무렵
제주도 유배에서 막 돌아온 추사 김정희를 찾아가 난 그림을
배우기 위한 난보를 청했다. 이에 김정희는 난화 한 권을 보냈다.
이하응의 초기작에서는 추사 <난맹첩>의
구도나 난법이 철저히 응용되었다.
이하응의 <묵란첩>은 바로 그가 추사의 영향을 받아
묵란을 자기화했음을 보여준다. 이하응의 묵란 잎 끝이
가늘고 변화가 심한 특징을 보인다. 그가 김정희의 난법을
배웠다고는 하나 김정희 묵란의 투박하고 필획의 변화가
적은 특징과는 차이가 있다.
추사를 이은 이하응 난법은 그의 측근이었던 김응원, 윤영기를
비롯한 근대 묵란가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흥선대원군 이하응 필묵란도◈ ↑↓
1.2폭
3,4폭
5,6폭
7,8폭
9,10폭
11,12폭
- 해설에서 언급된 참고 자료 -
근대에는 조선시대 묵죽의 명가들을 이어 묵죽으로
이름을 날린 화가들이 대거 등장하였다. 민영익, 김규진, 김진우
등이 특히 이름이 있었다. 김규진은 굵은 통죽으로 유명하다.
김규진의 <월하죽림도>는 그의 묵죽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열 폭의 병풍에 이어 보름달이 뜬 달밤 대숲의
하단부를 확대해 그린 것이다. 하단에는 쑥 올라온 죽순
을 그려 봄비 온 후 대숲의 싱그러움을 표현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