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山網切(양산망절)氏는 日本(일본)의 姓氏(성씨)로 1971年에 歸化(귀화)한 網切一郞(망절일랑)氏가 始祖(시조)라고 볼 수 있다.
慶南(경남)梁山市(양산시)內松里(송내리)에서 버섯을 栽培(재배)하는 網切一郞氏(망절일랑씨)는 韓國(한국)에서 태어나 事實上(사실상)韓國人(한국인)으로 살아왔다.
그는 1942年 慶南(경남)金海(김해)에서 日本人警察幹部(일본인경찰간부)(警務課長)의 8代(8대)獨子(독자)로 태어났다.光復(광복)으로 家宅軟禁(가택연금)中 이던 父母(부모)가 이웃에 놀러간 네 살배기 아이를 챙길 틈도 없이 强制送還當(강제송환당)하면서 그는 天涯孤兒(천애고아)가 되었다.그後(후)이웃 梁某氏(양모시)의 보살핌을 받았고 戶籍(호적)에는 '梁一郞(양일랑)'이란 이름으로 올랐다.
그는 68年 軍(군)에 入隊(입대)했다가 70年 日本(일본)鹿兒島縣(녹아도현)(가고시마)에 살고 있던 父親(부친)과 相逢(상봉)하고 日本(일본)國籍(국적)을 回復(회복)했지만 이듬해 곧바로 韓國(한국)에 歸化(귀화)했다.'妻(처)와 아이가 있고 韓國人(한국인)으로 生活(생활)해와 日本人(일본인)으로 살기가 어려울듯했다.獨者(독자)여서 日本(일본)에 親戚(친척)도 없고.나를 길러준 韓國(한국)에서 韓國人(한국인)으로 사는 게 自然(자연)스럽다고 判斷(판단)했다.'
日本式(일본식)姓(성)을 그대로 옮겨 온 것에 對(대)해'핏줄의 由來(유래)를 人爲的(인위적)으로 바꾸기 싫었을 뿐 日本(일본) 國籍(국적)을 繼承(계승)한다는 意味의미올렸다.國內(국내)網切氏(망정씨)는 70年 日本(일본)訪問(방문)에서 버섯이 將次(장차)韓國(한국)食卓(식탁)에도 오를 것으로 判斷(판단)하고 72年 梁山郡(양산군)內松里(송내리)野山(야산)을 賃貸(임대)해 버섯 栽培(재배)를 始作(시작),94年國內(국내)에선 처음으로 새송이 栽培(재배)에 成功(성공)했다.그리고 2004年 水蔘(수삼)보다 사포닌 性分(성분)이 40%나 더 含有(함유)된 ‘紅蔘(홍삼)새송이’를 開發(
개발)해 特許(특허)를 따냈다.94年엔 20餘(여) 家口(가구)의 內松里(내송리)全體(
전체)를 버섯 마을로 탈바꿈시켜 이런 功勞(공로)로 99年 新知識人賞(신지식인상
),2001年 새 農民賞(새농민상)大統領賞(대통령상) 等(등)굵직한 賞(상)을 10餘(10여)次例(차례)나 받았다.또한 每年(매년) 한 次例式(차례씩)梁山市(양산시)와 가고시마(鹿兒島縣)農民間(농민간)交換(교환)홈스테이를 이어오는 等(등)民間外交(민간외교)에도 나서고 있다.
現在(현재) 夫人(부인)鄭順南氏(정순남씨)와의 사이에 2男2女(2남2녀)를 두었고 長男(장남)網切龍氏(망정용씨)가 1男1女(1남1녀),次男(차남)網切雄氏(망절웅씨)가 2男1女(2남1녀)를 두어 모두 10名(10명)의 網切氏(망절씨)가 國內(국내)에 居住(거주)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