姓氏의 故鄕

南原太氏(남원태씨) (1017).

아까돈보 2011. 7. 20. 23:55

 

 

  南原太氏(남원태씨)

 

▣ 由來

 

 

始祖(시조) : 太孟禮(태맹례)


始祖(시조)太孟禮(태맹례)는 太集成(태집성)(峽溪太氏)의 9世孫(9세손)이다.太明(태명례)는 朝鮮(조선)端宗(단종)進士(진사)를 지내다가 禍(화)를 입어 1454年(端宗2)咸北(함북)吉州(길주)로 流配(유배)되었는데 後孫(후손)들이 그곳에 살면서 太明禮(태명례)를 始祖(시조)로 하고 峽溪太氏(협계태씨)에서 分貫(분관)하여 祖上(조상)의 故鄕(고향)인 南原(남원)을 本貫(본관)으로 하였다.
 

▣ 人物

 

 

太孟禮(태맹례)의 아들 太知(태지)가 武科(무과)에 及第(급제)하여 兵馬節制使(병마절제사)를 지내고 嘉善大夫(가선대부)로 工曹參議(공조참의)에 追贈(추증)되었으며,그의 孫子(손자)太元熙(태원희)는 訓練院判官(훈련원판관)을 歷任(역임)하여 訓導(훈도)를 지낸 太仁國(태인국,萬戶太元齡의 아들)과 함께 家門(가문)을 빛냈다.
 

▣ 行列字(항렬자)

 
25世
상(相)
26世
환(煥)
27世
준(峻)
28世
석(錫)
29世
원(源)
30世
식(植)
31世
광(光)
32世
성(成)
33世
-
34世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26世孫은 25代孫)
 

▣ 本貫  沿革

 

 

本貫所在地: 全羅北道  南原

 

南原(남원)은 오늘날 全羅北道(전라북도)南原市(남원시)一圓(일원)의 地名(

지명)으로 16年(百濟溫祚王34)무렵에 古龍郡(고룔군)이라 불렀다가 196年(肖古王31)에 百濟(백제)의 5方(5방)中帶方郡(대방군)이 되었다.685年(新羅神文王5)에 9州5小京(9주5소경)의 하나로 南原小京(남원소경)이 設置(설치)되었고,757年(景德王16)에는 南原郡(남원군)으로 改稱(개칭)하였다. 940年(高麗太祖23)에 5縣(5현)을 管轄(관할)하는 南原府(남원부)로 改編(개편)되었다.1018年(顯宗9)知府事(지주사)로 고쳤다.1310年(忠宣王2)帶方郡(대방군)으로 降等(강등)되었다가,1360年(恭愍王9)府(부)로 昇格(승격)되었다.

1413年(太宗13)南原都護府(남원도호부)로 昇格(승격)되었으며,1457年(世祖3)에는 南原鎭營(남원진영)을 두었고,1654年(孝宗5)에는 全羅左營(전라좌영

)을 設置(설치)하였다.1740年(英祖16) 一新縣(일신현)으로 降等(강등)되었으나 이듬해 還元(환원)되었다. 1895年(高宗32)地方制度(지방제도) 改正(개정)으로 全羅4府(전라4부) 中 하나인 南原觀察府(남원관찰부)가 되었다가 1910年 南原48方(남원48방)을 22個面(22개면)으로 統廢合(통폐합)하고 1914年 郡面廢合(군면폐합)으로 南原郡(남원군)으로 改稱(개칭)하였다.1931年 南原面(남원면)이 南原邑(남원읍)으로 昇格(승격)되었고,1981年에는 南原邑(남원읍)이南原市(남원시)로 昇格(승격)하여 南原市(남원시)와 南原郡(남원군)으로

分離(분리)되었다가,1995年 南原郡(남원군)이 南原市(남원시)에 統合(통합되었다


 

▣ 人口數

 

 

統計廳(통계청)의 人口調査(인구조사)에 依(의)하면 南原太氏(남원태씨)
1985年에는 總371家口1,511名,
2000年에는 總351가구 1,105名이 있는 것으로 調査(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