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그림).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의 대표작 - 절규(絶叫).

아까돈보 2012. 7. 14. 00:08

 

 

절규(The Scream : 絶叫)

 

 

뭉크가 나무에 그린 유화 및 템페라

〈절규〉(1893), 91ⅹ74cm

 

절규(The Scream : 絶叫)

- 절규(The Scream : 絶叫) - 

노르웨이 상징파 화가 에드바르 뭉크

(1864~1944)의 대표작입니다. 

 

이 ‘절규(The Scream·1893년 작)’가 

지난 5월2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소더비 경매에서 

1억1990만 달러(약 1355억 원)에 낙찰돼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액을 

기록했습니다. 

이 작품은 현대 인간이라면

 떨칠 수 없는 불안을 묘사한 상징적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뭉크는 노르웨이 상징파 화가로 

수도 오슬로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의사였지만 심한 이상 성격 자였으며, 

어머니는 뭉크가 5세 때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5세 때 누나 역시 결핵으로 유명을 달리하고, 

여동생은 정신병에 걸렸습니다.


아버지와 남동생 역시 

뭉크가 어렸을 때 눈을 감았고, 

뭉크 자신도 건강이 좋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뭉크는 죽음의 공포와 질병에 대한 

불안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에 따라 

그림에 소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식교육도 별로 받지 

못했습니다.


이런 환경은 

뭉크의 작품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됐습니다.


뭉크는 작품 속에서 

줄곧 병듦과 죽음 그리고 슬픔에 

관한 기억을 표현했습니다. 


그는 원래 공학을 전공하려 했지만 

미술을 공부하려고 대학을 중퇴했습니다. 

후일 그는

 파리, 베를린, 오슬로 등에서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절규’는 

뭉크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으며,

 ‘인생의 장식 띠’라는 연작 가운데 하나로 

이름을 얻었습니다. 

이 작품의 영감을 

어디서 얻었는지에 대해 뭉크는 

“친구 두 명과 석양 무렵 걷고 있을 때, 

하늘이 붉게 변하더라.”며 “나는 피곤에 지쳐 

펜스에 기대고 검푸른 빙하 위로 

핏빛 불길이 넘실거렸다”고 

표현했습니다. 


친구들은 계속 갔지만 

그는 거기 서서 인생이 주는 공포에 전율하며 

끝없이 계속되는 자연 속의 절규를 

들었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뭉크가 명화 ‘절규’를 제작하기 전 날에 남긴 

일기의 한 대목입니다.


“친구 두 명과 함께 

길을 걷고 있었는데 거리와 

피오르(협만)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쪽으로 

태양이 지고 있었습니다. 

 

하늘이 돌연 피처럼 붉게 물들었습니다. 

나는 마음이 너무나 초조해져서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난간에 기댔으며, 칼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처럼 

검푸른 피오르와 거리 위로 낮게 깔린 

불타는 듯 한 구름을 바라보았습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자연의 날카로운 절규가 대기를 갈기갈기 

찢는 것 같았습니다.” 

‘절규’는 

인간의 불안과 슬픔을 

뛰어나게 표현한 현대화의 아이콘으로 

여러 작품에 패러디됐습니다. 

 

한 예로 

공포영화 ‘스크림’에서

 범인이 쓰는 가면이 ‘절규’의 

그것이었습니다. 

 

 

여지껏 가장 높은 경매 기록이었던 피카소의

 ‘누드, 초록잎 그리고 상반신’

(2010년 1억6백만달러에 경매 되었다.)


앞서 미국 뉴욕에서 열린 소더비 경매에서 

최고액으로 낙찰됐던 작품은 2010년 5월 이뤄진 경매에서

 1억650만 달러에 팔린 파블로 피카소의 ‘누드, 녹색 잎과 상반신(Nnfude, Green Leaves and Bust)’이었습니다. 


이번 뭉크의 ‘절규(The Scream)''가 

경매가 1억1990만 달러로 피카소의 ‘누드, 녹색 잎과 상반신(Nude, Green Leaves and Bust)’를 누르고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액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현대인의 마음속의 심각한 불안과 

공포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내면의 불안과 공포를 잊기 위하여

 Sex(피카소의 누드, 녹색 잎과 상반신)에 몰입하고 있지만 

이것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현대인들이 ‘절규’에 더 매료되는 것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현대인은 

왜 ‘절규’에 더 매료될까. 

많은 사람들이 근원을 알 수 없는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이 마음속의 불안을 비우는 

참된 방법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