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는 내동기들

경남 통영시 박경리 기념관 및 윤이상기념관 방문 - 처음처럼 (3)

아까돈보 2018. 6. 11. 10:37



 

 

 

 

 

 

 

토지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다.

대하 드라마로 본적도 있었다.

해서,     박 경리 하고 떠올리면

평사리와 간도의 용정이 떠오르고

최 서희와 길상이가 스쳐간다.

 

한국의 현대사를

이렇게 잘 그린 소설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는 웃고 울었었다.

 

우리의 이번 현장답사도

이런 상념에 젖으며 늦은 봄비가 내리는 가운데

기념관 앞에 왔으나

박 경리 선생님은 이름만 남아 마당과 전시실에 갖혀있고

매정한 안내실 직원은 차갑고 사무적이었다.

 

우리의 거듭된 사정과 호소를

그저 매마른 한마디로 차갑게 거절한다.

박 경리 선생님이 살아 계셨어도

이렇게 우리를 내치실까 원망이 들 정도로. . .

 

비가 내려,

 잠시 요기를 채울 비가림 마당을 빌리자는

원칙과 규정에 마당에 음식을 들수없다는 이유는

충분히 알아들을수 있지만

이렇게 비는 내리고 마땅한 방법이 없다면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을 나누고 편의를 걱정해줘도 좋으련만. . .

 

우리는 바로 앞 길가에

문닫긴 가게의 파라솔에 어깨를 피하고

길가 간이 정자에 궁둥이를 비비고 비를 피해

통영 김밥으로 점심을 떼고 있다.

마치 연락선 선실 바닥에 주저앉아 요기를 떼듯이 말이다.

 

그래도 박 경리 선생님은 속속들이 우리 마음을 알았다는듯이

마당에 들어선 우리에게 앞으로는 행운이 함께 할것이라면서

네잎 크로버를 너도 나도 찾게 우리 눈을 열어 주신다.

나도 하나를 알뜰히 찾아서 곱게 간직하였다.

 

하동에 있는 박 경리 문학관,

원주에 있는 박 경리 문학공원,

그리고 여기 통영 고향에 있는 기념관

그를 기리는 시설은 이리도 잘 조성되고 있지만

그분의 정신과 마음을 현창하는건 조금더 가다듬어야겠다.

 

우리는 우산을 쓰고 삼삼오오

골목길을 더듬으며 윤 이상 기념관을 찾아 나섰다.

한때는 시대의 아픔을 겪으며 이름을 입에 올리는것도 힘겨웠는데

이젠 통일을 몸소 일군사람으로,

그리고 국제적 명성을 얻은 음악가로서

통영이 자랑하는 또 한분의 예술가로 충분한 대접을 받고 있다.

 

나는 그가 직접 썻다는 작곡 악보와 첼로를 들여다 보면서

뜻밖에 한사람을 떠올리고 있다.

안동대학교에 근무하던 음악과 작곡전공 최 인찬 교수이다.

사석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독일 유학시절

윤 이상작곡가와 교류하면서 쌓은 추억담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최 교수 작곡 발표회를 참가한 적도 있었는데

현대음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던 나로서는

너무나 난해하여 당황스러웠는데 함께 참석했던

미술과 이 수창 교수도 나보고 뭐 좀 이해 됩니까하고 웃으셨는데

들어보지 못하였지만 윤 이상 작

오페라 < 심 청 > 도 성공작이고 대표작이라 들었지만

제대로 즐기며 듣기엔 힘겨운 걸 떠올리며

혼자 빙긋 웃고 있으니 누군가 무엇을 보고 웃는지 묻는다.

 

조금은 당황스런 순간이라

해설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나는 밖으로 나와 비에 젖은 야외공원과 공연시설을 돌아본다.

 

참,  최 인찬 교수님은 어디 계시는지 ?

살아계시는지 아님 윤 이상과 함께

독일 추억담에 젖어 계시는지 ?

그것이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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