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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uh512/11413
영양 석보 남자현 지사의 생가터를 다녀와서
김도현 지사의 생가터를 돌아보고 영양군 석보면 지경리 남자현 생가를 찾아갔다.
영양지역의 독립운동은 김도현 의병장이 이끄는 전기의병이 강하였으며
만주에서 의열투쟁한 남자현, 상해에서 아나키스트로 의열투쟁한 엄순봉(엄형순)
하와이이민 1세대로 스크린이 그려전 발(어름철용)을 개발해 독립자금을 지원한
권도인등 우국지사들이 많이 활동을 하였다고 김지현 차장이 소개를 하였다.
남자현(南慈賢 1872~1933)은 영남의 석학인 남정한의 막내딸로 태어나 부친의
가르침으로 소학과 대학을 통달하고 19세에 의성김씨 김영주에게 시집갔으며
남편이 1986년 훈구리전투에 의병장 이현규의진에 참여하였다가 전사를 당하였고
유복자 아들 양육과 시어머니를 돌보며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던 남자현은
46세때 3.1운동이 일어나자 항일구구운동만이 남편의 원수를 갚는길임을 깨닫고
만주 망명길에 올랐다.
50세까지 여성계몽운동과 독립정신 고취 활동을 펼쳤고
1925년(망명 6) 사이토 마코토 통독살해를 시도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1927년 투옥중인 안창호 김동삼등 50여명의 옥바라지를 하여
망부(亡夫)의 설원(雪寃)을 위해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리었고
1932년 9월 국제연맹조사단에 왼족무명지 2마디를 잘라 흰천에
조선독립원(朝鮮獨立願)아라는 혈서를 써서 잘린 손가라과 함께 전달하였으며
1933년 얼굴에 상처를 내고 거지로로 변장하여 만주국주재 전권대사를 제거
하려다 적발되어 붙잡혀 14년간 독립의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고문을 당하고
옥중에서 15일간 단식투쟁하다 보석으로 출소하여 하얼빈 여관에서
유복자 아들에게 "인민폐 248원을 해방후 독립축하금으로 전달하라"며
"사람이 죽고 사는것이 먹는데 있는것이 아니고 정신에 있다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 지느리라"유언을 남기고
1933.8.29.60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남자현 지사가 남편을 보내고 시어머니에게 효도하고 아들 양육을 하면서
독립운동의 불씨를 마음속에서만 키워오다가 시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 꿈을 펼치며 남편의 원한과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한몸을 바치신 자사의
정신을 되세기며 생가와 영정각을 돌아 보았으나
생가터가 협의불가로 이웃터에 복원되었다는 설명을 들으며
조금 아쉬운 마음을 안고 영덕의 "첫눈애 감자탕"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세상사 한마디
아들아 나는 여자가 아니다. 네 어머니가 아니다.
나는 나라잃은 나라의 남편을 잃은 아내다.
나라 잃었을때 나도 잃었고 남편 잃었을때 여자도 잃었다
내 죽음 슬퍼하지 말아라 나는 슬프게 죽지 않았다.
나라잃은 그날부터 내 몸은 강토(疆土)였다
<이상국의 남자현 평전 '나는 조선의 총구다' 중에서
실제 생가터는 조립식 건물이 있고 이웃에 복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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