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져온 글과 그림

[스크랩] 안동 양반

아까돈보 2008. 10. 4. 19:07

 

 

                

안동의 정체성에 하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시는?" 서울? 아니면 부산?

"시군 통폐합 이전에 지정문화재가 가장 많았던 고장은?" 경주? 서울? 부여?

정답은 둘 다 '안동'이다.


안동시가 면적 기준으로 가장 큰 시가 된 것은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에 편입됐기 때문이다. 1992년 통계로 국보와 보물 등을 포함해 국가 또는 시도가 지정한 문화재는 안동군이 178점으로 가장 많고 경주시가 173점으로 그 다음이다.



도산서원


경주시와 월성군이 합쳐지면서 안동시를 간발의 차이로 따돌리기는 했으나 상식을 뛰어넘는 통계가 아닐 수 없다. 삼국시대부터 변방이요 산간지방인 안동이 역대 수도를 모조리 따돌리고 문화재가 가장 많은 고장이 된 연유가 무엇일까?

이런저런 호기심을 품고 떠난 여행이 2박3일(7월 24~26일) '유교문화체험'이었다.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심우영)이 새로 마련한 연중 운영 프로그램이다. 세명대 교직원 40명이 함께 참여했고, 반(班)은 달랐지만 전국 각지의 교사 수십 명도 같이한 체험이었다.

고향 떠난 40년... 38년만의 감상적 여행

이번 여행은 나에게 뿌리 찾기의 성격을 띠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안동군 일직면(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이 교회종지기로 살았던 곳)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마치고 외지로 나왔으니 실로 38년만의 '감상적 여행'이 아닐 수 없다.

20여 년 전 <조선일보>에서 일할 때 '로댕전시회'를 위해 내한한 박물관장 등 프랑스 문화계 인사들을 하회마을로 안내한 적이 있을 뿐 정작 안동 일대를 여행할 기회는 없었다. 
 
도산서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의 와룡초등학교는 아버지가 교감으로 재직하다가 사라호 태풍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던 곳이다.

당시 학교와 사택이 통째로 날아가면서 교장선생님은 즉사하고 아버지는 머리를 크게 다쳤다. 얼굴에 피 칠갑을 한 채 사택으로 달려와 "애들 어떻게 됐노"를 외치던 아버지 모습이 여태 선명하다. 아버지는 사경을 헤매는데 신작로에는 미루나무가 이리저리 쓰러져 읍내에서 오던 앰블런스는 사이렌만 울려대며 허둥댔다.

그 신작로가 포장이 되고, 콜타르를 발라 검었던 목조 교사가 베이지색 콘크리트 건물로 바뀌었을 뿐,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들은 거의 반세기 전의 옛 기억을 되살리고 있었다.

'아! 저 산이 저렇게 낮았나.'

학교 옆 야산이 험산준령처럼 보이던 어린 시절이었다.

안동문화 상당 부분은 '양반' 아닌 '상놈' 들의 유산 

그 동안 이런저런 책을 보면서 잠깐씩 향수를 느껴보는 게 고향에 대한 관심의 끝이었다. 임재해 편찬의 <안동문화의 수수께끼>,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3>, 홍승균·이윤희 공역 <퇴계언행록>, 임세권의 안동문화에 대한 논문 등이 그런 책들이다.

임재해 교수가 편찬한 책은 각 분야 학자들이 12개 관점에서 안동문화의 수수께끼를 풀어간다. "안동을 왜 목조건축의 보고라 하는가?" "국보 하회탈의 신비는 어디에 있는가?" "안동에는 왜 전탑이 많이 모여 있을까?" "유학의 고장에 기독교가 성한 까닭은 무엇인가?"

고향을 묻는 사람에게 "안동"이라고 답하면, "아! 안동 양반이네요"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그 때 나의 반응은 "안동 상놈도 있습니다, 양반 수발하느라 상놈도 얼마나 많았겠습니까"라며 어깃장을 놓는 경우가 있다. 이 말에는 안동을 '양반의 고장'으로만 이해하는 데 대한 약간의 불만이 섞여있다.

하회 병산서원

 


실제로 안동문화 속에는 이른바 '상놈'들이 이룩한 문화유산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하회 탈춤도 백정의 입을 빌려 양반을 풍자하는 백성들의 놀이판이 아니던가. 무당이나 판수가 성주풀이를 할 때 불러 모시는 성주신의 고향도 안동이다.

"성주의 본향이 어디멘고, 경상도 안동 땅 제비원이 본일러라."

안동은 '차전'과 '놋다리밟기'등 고유의 민속놀이가 고스란히 전승돼온 곳이기도 하다.

안동은 또 우리나라 불교문화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국사 교과서에도 나오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봉정사 극락전과 가장 오래된 벽돌탑인 법흥동 7층전탑이 모두 안동에 있다.
가장 오래된 강원도 상원사 동종도 실은 안동에 있던 것을 예종이 세조의 명복을 비는 원찰인 상원사로 옮기도록 명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 나왔다' 하면 안동인 이유

안동 일대에서는 아직도 귀한 유물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이번 달에도 이름없는 작은 절인 보광사(도산면)에서 최고 오래된 목조 불상의 하나로 여겨지는 '관음보살좌상'이 나와 발굴조사단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안동문화를 가장 티 나게 드러내는 것은 역시 종갓집과 재사 등을 중심으로 맥을 이어가고 있는 반촌(班村)문화이다.

서원과 서사·누정 등은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렸고,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등이 최근에 '선비문화체험' 장소로 재활용되고 있는 정도이다. 김휘동 안동시장은 "현재 47개 종갓집과 37개 서원이 골골이 남아있어 가문의 명예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종갓집을 비롯한 고가와 서원은 보존문화의 센터들이다.

종손과 문중은 조상들의 손때 묻은 서적을 비롯한 유품들을 생명만큼 귀중하게 여기며 보존해왔다. 우리나라에서 유일본인 훈민정음 원본이 안동군 와룡면 광산김씨 긍구당(계실)에서 1940년에 기적처럼 발견된 것은 이런 보존문화의 소산이다.

그러나 후손이 한미해진 문중도 많아 귀중한 문화유산이 급속히 멸실되고 있는 실정이다. 불에 타고 쥐가 쏠거나 습기에 훼손되는 전적과 목판도 많다고 한다. 이런 때에 국학진흥원이 고서와 목판의 수집·보존과 조사사업에 나선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김순석 박사(수석연구원)에 따르면, 민간에서 제작된 목판은 40만장 정도였는데 20만장 ㅅ뎔?근래에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학진흥원은 남아있는 20만장 가운데 10만장을 보관할 목표를 세우고 이미 5만5000장의 목판을 수집했다. 도산서원 장판각에 보관되던 '도산십이곡' 등 목판 4000여장도 모두 진흥원 장판각으로 옮겨졌다.

"목판은 진흥원이 보존과 연구만 하고 문중이나 개인이 소유권을 갖기 때문에 언제든지 도로 가져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경북 북부지역 외에는 아직 호응이 크지 않습니다."

김 박사는 문중에서 위탁을 반출로 생각해 멸실의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진흥원은 국내유일의 유교문화박물관도 운영하는데 '참사람이 되는 길' '더불어 살기' 등 주제별 전시가 이채롭다. 각 문중에서 보내온 유물들 중에는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 같은 국내 유일본도 많다.





                              안동 국학진흥원 목판 

반촌문화는 박제가 아닌 살아 숨쉬는 문화유산

반촌문화의 특장은 박물관 진열장 속의 유물이나 유적이 아니라 그것들이 '문화행위'와 결부돼 살아 숨쉬는 문화유산으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후손들이 실제로 거주하면서 제례·복식·음식 등의 문화를 총괄적으로 전승하고 있다. 가령 4대가 지나도 계속 받드는 불천위 제사만 하더라도 문중마다 절차와 음식 등이 조금씩 다른데, 그 유래들이 재미있다.

불천위 제사는 장엄한 행사여서 내외 관광객을 위한 '볼거리'로도 권장할 만 하다. 예전에도 문중뿐 아니라 전국의 유림들이 몰려들었으니, 예의를 갖추는 관광객에게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제사가 끝나고 관광객에게 조금씩 음복을 나눠준다면 세계에 이런 기이한 문화체험도 없으리라.

도산의 퇴계종택은 원래 딸에게 상속됐다가 멸실된 뒤 약간 떨어진 토계리 시냇가에 퇴계 문중이 다시 지은 것이라 한다. 윤천근 안동대 교수는 "당시만 해도 아들딸에게 고루 재산을 나눠주는 전통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뒤 장자 위주로 분재 방식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또 "딸에 대한 분재가 타성이 입향하게 되는 요인이었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충청도 한산이 본관인 우리 집안이 안동에 입향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집안의 입향조는 서애의 사위이다.

버스가 퇴계종택에 도착했을 때, 솟을대문은 활짝 열려있고 종손의 맏아드님인 이근필(76)씨는 사랑마루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수십 명 일행 중 아무도 감히 깨울 생각을 못하는데, 안동이 고향인 김광림 세명대 총장이 전부터 친분이 있는 듯 큰 소리로 외쳤다.

"어르신, 광림이시더."

그제서야 화들짝 잠에서 깬 이씨는 "오시는 날이 내일인 줄 착각했다"며 미안해 했다. 1958년부터 인천 제물포고 교사로 일했던 이씨는 '종가를 지키라'는 김판영 경북도교육감의 특명으로 인근 도산국민학교와 온혜국민학교에서 교장으로 재직했다.

이씨는 10여 년 전 부인을 사별한 뒤 종손인 이동은(99) 옹을 모시고 외롭게 종택을 지킨다. 이옹은 퇴계가 편찬한 선비들의 건강유지법인 '활인심방'으로 심신을 단련해 장수를 누리고 있다.

이근필씨는 "날씨도 무더운데 고생스레 찾아오셨다"고 반기면서도 "선비문화체험은 고생을 해보는 것"이라면서, 건강을 해쳐가며 학업에 몰두했던 조상 얘기를 풀어갔다.

귀양 온 선비의 '바보 딸'과 재혼한 퇴계

퇴계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엄숙한 유학자의 면모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로는 상당히 진보적 사상을 가졌고, 기본적으로 남녀평등주의자였다. 조카가 병으로 일찍 죽었을 때 식음을 끊고 따라 죽으려던 조카며느리를 설득해서 살린 것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일화다. 퇴계에게 생명은 정절이나 효보다 더 귀한 거였다.

첫 부인을 사별하고 얻은 둘째 부인은 퇴계문중에서 '바보할매'로 불린다. 그녀는 무고로 예안에 귀양와 있던 선비 권사락정의 딸이었다. 권씨는 숙부가 형장에서 맞아 죽고 숙모가 관비로 끌려가는 등 집안이 풍비박산되면서 큰 충격을 받았던 듯하다.

퇴계는 "딸을 거두어달라"는 권사락정의 간곡한 부탁을 받아들여 재혼한다. 퇴계도 마음고생은 심했던 듯, 부부끼리 화목하지 못한 제자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 글을 썼다.

"나는 재혼을 했으면서도 참으로 불행했네. 그렇지만, 나는 감히 박대하려는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었고, 잘 대접하려고 수십 년 동안 갖은 노력을 다했네…(중략)…부부의 도를 실천하지 아니하고서 학문은 무엇 때문에 하는가."

맞배지붕 홑처마에 외문을 단 도산서당은 더 이상 간결할 수 없는 한옥 양식이다. 직접 구상해서 지은 도산서당은 소박하기 그지없었던 퇴계의 생활상을 말해준다. 단칸방이 광대무변의 사상세계를 가둘 수는 없었으니, 퇴계는 거기서 우주를 통찰했다.

그러나 현재의 도산서원은 후세 사람들의 겉치레 공경이 지나쳐 퇴계의 인간적 면모를 오히려 허물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호화스런 건물이 빽빽이 들어서고 성역화사업 때 관아처럼 높게 기와돌담을 쌓은 탓인가? 도산서당의 단칸방 외문에 팔걸이 하고 내방객을 반기는 퇴계가 아니라 일년에 몇 번 문 여는 상덕사에 위패로 모셔진 퇴계를 떠올리게 된다.

유적지를 호화스럽게 만드는 것이 복원은 아닐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올라간 전교당에서는 마침 다른 '선비문화체험연수단'이 붓글씨 연습을 하고 있었다. 연수단에 참여하면 여성도 상덕사를 참배하는 알묘례를 올린다고 한다. 이런 체험들이야말로 돌담과 진열대 안에 갇혀있는 문화유산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다.

문화체험은 유교문화와 선비문화뿐 아니라 산사체험 등 다양한 형태로 전국에서 제공되고 있다. 국내 문화체험은 해외여행에서는 살갑게 느껴지지 않는 그 무언가를 뿌듯이 채워주는 매력이 있다.

 


사진; 위로부터    
하회 겸암정사

                       하회 주일재

                       하회 하동고택

                       화천서원                 


해외로 나간 여행객수는 지난해 1161만명을 돌파한 데 이어 올해는 130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 한다. 물론 우리나라의 해외여善痴測?엄청난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아직 여행 계획을 확정 짓지 않은 분이라면 돈도 절약할 겸, 이번 여름엔 문화체험을 한번 떠나 보는 건 어떨까? 



이봉수 기자는 <조선일보> 기자, <한겨레> 논설위원과 경제부장 등으로 일했으며, 지금은 세명대학교 교수(언론학)이다.

출처 : 하리와 솔뫼
글쓴이 : 하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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