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화려한 기모노와 그로테스크한 화장은
한때 일본 여성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움과는 달리대부분의 게이샤는
슬픈 운명을 타고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은 출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진정한 예술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한다.
게이샤의 목표는 언제나 완벽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영원히 이룰 수 없는 꿈이기도 하다.
낡은 2층짜리 목조 가옥이 빽빽이 들어서 있는
교토(京都)의 게이샤 촌(村).
집집마다 비밀스러운 것을 감추고 있는 듯 창문이 꼭 잠긴채
주렴(珠簾)까지 드리워져 있어
밖에서는 도저히 안을 들여다 볼 수가 없다.
이제는 누구든 쉽게 이 곳에 들어올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게이샤를 만나기란 쉽지가 않아서
며칠전에 지인을 통하고 예약하고 수락을 받아
그들의 안내를 받지 않고서는 게이샤 집에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다.
손님에 따라 언제 어느 정도로 큰절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면서
손님보다 좋은것으로 치장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가르쳐주면서
맨손톱에 머리장식과 기모노장식품 외에는
어느 장식품도 갖고 있지 않았으며
시종일관 미소를 머금고 무릎 끓은 채
꼿꼿한 자세를 흐트리지 않는 모습은
내가 외국인이어서 더욱 그러했는지도 모르겠다.
< A style="TEXT-DECORATION: none" href="http://cafe.daum.net/maylove520" target=_blank>1751년 교토의 어느 유곽에서 처음 선을 보인 게이샤는
수백 년에 걸쳐 섹스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접대로 남자들을 사로잡았다.
원래 게이샤의 원조는 남성이었지만,
50년이 지난 지금 이 직업은 완전히 여성만의 아성이 되었다.
아직까지 일본에서는 게이샤와 매춘녀를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다.
접대를 하는 예술가로 평가받는 게이샤는
고객과 잠을 자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며,
만약 같이 잔다고 해도 절대 돈을 받지 않는다.
게이샤의 고객은 일본재계와 정계의 내노라 하는실력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게이샤는 일본 남자들의 출세의 한 상징이기도 하다.
일본의 경제 기적이 시작되기 전까지 여성들은
주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이 길을 택했다.
나이 많은 게이샤들이 살아온 이야기는
책 한 권을 쓰고도 남을 정도로 구구절절한 사연이 많다.
이들은 대개 가난한 부모를 만나 남에게 팔리거나,
남편에게 버림받거나, 게이샤나 창녀의 딸로 태어난 경우가 많다.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새로운 삶을 개척 하거나
스스로 살아 있는 문화재가 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게이샤가 되면 개인의 신상에 관한 것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친다.
이것은 게이샤 그녀들만의 의 긍지이기도 하다.
게이샤의 세계는 감각적이다.
비단처럼 부드러운 피부, 쌀겨로 만든 돗자라, 그리고 뜨거운 곡주와 진수성찬.
애달픈 현악기 소리와 최면을 거는 듯 일정한 박자로 연주되는 북소리.
지독한 일벌레인 일본 남성을 유혹하는 것은 무엇일까?
게이샤가 있는 밤의 세계에 빠져드는 것은
엄격한 통제와 무자비할 정도로 긴장의 연속인 사무실에서의 탈출이다.
냉철한 이들의 이성을 유혹하는 것은 알코올이다.
그들은 이곳에서 만큼은 마음껏 웃고,
떠들고, 진정으로생각하는 것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게이샤는 남자의 심복이나 다름없다.
거기서는 남자에게 해가 되는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는다.
매일 밤, 매주 혹은 매달 이어지는 이 「카타르시스」는
남자들이 홀가분하게 내일을 준비할 수 있게 해 준다.
게이샤는 한 남자의 사치품이자 사회적·경제적 능력을 증명해 주는 상징이다.
밤의 모임은 매우 자유롭게 진행되는데,
고객이 들어오면 게이샤는 머리가 땅에 닿도록 형식을 갖춘 절을 한 후,
옆에 앉아 연신 웃으며 안주를 먹여 주고 술을 따른다.
게이샤 한 명이 일어나 춤추기 시작하면
남자들은 그녀의 빼어난 자태에 넋을 잃게 마련이다.
사미센(三味線, 줄이 3개이며, 목이 길고 줄받이가 없는 일본의현악기)을
뜯으며 게이샤 노래를 부른다.
교육을 마친 「마이꼬」는 사교 모임에 참석할 수는 있지만
대화의 흐름을 주도해서는 안 된다.
그녀는 단지 모임의 장식품에 불과하다.
술자리가 다 끝나고 손님이 자리를 뜰 때
게이샤는 밖으로 나가 비틀거리는 손님에게
오오끼니(고맙습니다)』를 연발하며 공손하게 머리를 숙인다.
게이샤는 철저하게 한 남자의 기호품이 되고자 노력한다.
백지장처럼 게이샤는 아름답지만 슬프게도 이름이 없다.
게이샤가 되면 개인 신상에 관한 모든 것은 모조리 지워진다.
새하얀 화장은 언뜻 그로테스크한 인상을 풍긴다.
특히 대낮에 보면 마치 유령 같아 보인다.
하지만 촛불 아래에서는 아주 신비스러운 매력을 발산한다.
금빛으로 빛나는 얼굴은 고혹적이기까지 하다.
10대로 보이는 게이샤가 실제로는 성숙한 여인인 경우가 허다하다.
게이샤에서 「게이」란 일본어로 「예술로 먹고 사는 사람」을 뜻한다.
일본 미학에서 예술이란 포장이다.
즉 일상생활의 모습을 감추고 철저히 의식화(儀式化)한다.
교토의 게이샤 촌에서는 딸, 어머니, 고모, 조카 등
여러 세대의 게이샤가 함께 모여 사는 경우도 있다.
「오카미상」(가장 나이가 많은 게이샤)은 대모로서
전권을 장악하고 있다.
급속한 서양 문화의 유입으로 요즈음에는
게이샤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고자 하는 소녀들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일단 이 길로 들어서겠다고 마음먹을 경우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우리나라의 권번과 같은 학교를 다닌다.
옛날과는 달리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아주 낭만적인 상상을 하거나 일본 전통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입문한다.
새하얀 얼굴, 새빨간 입술, 그리고 펄럭거리는 넓은 소매의 기모노를 입은
어린 소녀들에게서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연민과 매력이 느껴진다.
골짜기처럼 굽이치는 아름다운 머리모양을 만들기 위해
게이샤는 고통스러운 대가를 치러야 한다.
어린 게이샤가 이런 머리를 몇 년 하고 나면 정수리가 벗겨지게 된다.
(일본의 머리값이 워낙 고가인 탓에 한번 올린 머리는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면서
일주일간 지속시킨다고 한다-.-;;)
마이꼬 사이에서 이것은 「영광의 상처」로 불린다.
게이샤는 신체적인 고통에 민감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몇 시간씩 꼼짝 않고 무릎을 꿇고 앉아 고통스러워도
절대 얼굴을 찡그려서는 안된다.
꿇어앉는 자세는 전통을 잘 지키는 일본 여인들에게도 상당히 힘든 일이다.
게이샤는 잠을 잘 때에도 공들여 장식한 머리를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해
밀알을 잔뜩 채우고 천으로 겉을 감싼 높은 목침을 목밑에 베고 자야 한다.
나이 든 게이샤는
한결같이 옛날에 비하면 요즘의 훈련은 하나도 혹독하지 않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스승이 마이꼬를 훈련시킬 때,
한겨울에 문 밖으로 쫓아내 손가락에 피가 날 때까지 사미센을 연주하고
목소리가 가라앉을 때까지 노래를 부르도록 강요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10명의 마이꼬 가운데
9명은 수련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중도에 포기하고 있다.
수련 과정을 잘 견뎌 내야만
마이꼬에서 진정한 게이샤로 변신할 수 있다.
진정한 게이샤가 되면
더 화려하고 세련된 기모노를 입고 화장도 한층 품위있게 한다.
이때부터 목에는 매듭을 달고,
머리에 있던 영광의 상처도 자취를 감추게 된다.
신출나기일수록 허리에 두르는 띠의 길이가 길었던것도
이제서야 이해가 가게 되었다.
내 옆에 앉아있는 어린 그녀는 게이샤 4년차인데
자그마치 6m가 (무게는 잊었다-.-;; )넘는 띠를 두르고 있었다.
게이샤의 움직임은 완전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멋을 풍긴다.
그들은 다도(茶道)뿐만 아니라 전통 무용, 사미센 연주, 일본의 전통 가요,
그리고 서예를 연습한다.
그들의 목표는 언제나 완벽이지만
그것은 죽을 때까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개 일본 남성들은 대화를 통해 게이샤의 노련미를 판단한다.
게이샤는 춤과 연주는 기본이며 화술도 뛰어나야 한다.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 스모, 연극 등
최신 화제는 물론 음담패설까지도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육도 시켜주고, 값비싼 기모노도 사주며,
해외 여행도 함께 가고,
집이나 가게 하나 정도는 기꺼이 마련해 줄 수 있기를 원한다.
어쩌다가 고객의 아기를 낳게 되면
자신의 아기로 인정하고 양육비를 받기도 한다.
드물기는 하지만
운이 좋아 고객이 독신이라면 결혼에 성공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그들은 미련없이 게이샤 세계를 떠난다.
게이샤의 평균 나이는 40세 이상이다.
나이가 많은 게이샤는 게이샤 집을 직접 운영하며
춤과 음악을 지도하고 시(市)에서 실시하는
연례 공연에 참석하기도 한다.
그들은 80세가 넘는 고령에도
두꺼운 옷을 입고 무거운 가발을 쓴 채 뜨거운 조명 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전통 가부끼(歌無伎)를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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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하리와 솔뫼
글쓴이 : 하리와 솔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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