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김 수환 추기경님을 모시고
내가 근무하는 문화회관 에서
방문기념 방명을 받을때였다.
신분도 그러하고
당시 분위기도 엄숙한데
방명하시기를
< 첫사랑 안동 > 하고 적으셨다.
순간 조금은 의외였고 특별한 방명이시라
머뭇거리는 나에게
첫직장, 첫임지가 어디였느지를 물으셨다.
선생이었고,
봉화, 춘양이라고 대답드렸더니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꺼라면서
추기경님도 첫임지인 안동을
첫사랑같이 잊을수 없다고 하셨다.
오랫적 이야기인데 오래 기억에 남는다.
오늘 이 일화가 생각나는건
작년부터 우리 동기 친구 권 성명 선생이
오랫동안 객지에 떠돌다
늙그막에 고향 안동에 찾아와 살고 있다.
적당히 삶에 고단하고
외롭고 어려운 처지가되어 찾아든
고향의 노년 생활이라
안동 터줏대감인 천세창 친구와 더불어
나도 조금은 신경을 써주어야 할것 같아
가끔씩 만나 편하게 짜장면을 나누어 먹으며
지난시절 회안에 젖기도 하고
신세 한탄도 같이 하는 처지가 되었다.
얼마전 가을이 무르익어갈 쯔음
짜장면 점심을 먹다가
어디 휘적휘적 속이 뚫피게 쏘다녔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푸념하면서
꿈 많던 초년시절 포항 구룡포에서 보낸
60 년대 초 그립던 시절이야기를 하는것이었다.
같은 시절을 갖고 있고 처지가 비슷한지라
울컥 마음이 일어서 그럼 올 가을 나들이를
권 선생 소원하는 구룡포로 해보자고
얼결에 약속해 버리고
뱉아버린 말을 책임지느라
가까이 지내는 천세창, 류길하 친구에게
어떠냐고 했더니 숨도 쉬지 않고
그래 우리 그래주자 하고 순식간에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워지게 되었다.
바로 오늘이 그날이다.
아침 일찍 우리상회에 모인 우리는
첫사랑 애인을 찾아 떠나는 설레임으로
밤잠도 설첬다는 권 선생의 흥분을 기회삼아
그의 인생역전 이야기도 듣고
젊었던 시절 애틋한 사랑 이야기도 나누었다.
지금은 농으로 하는 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사연 하나하나가 다 드라마가 되고
찐한 소설이 되어
웃고 떠드는 가운데도
눈물이 번질번질 배어날걸같은 전설이 된다.
4, 50 년만에 찾은 구룡포 초등학교와
그 바닷가는 비록 옛 추억의 사진은 아니었지만
많이 변했더라도 반갑고 정이 되살아나는
묘한 심사는 구경하는 나 같은
친구따라 장에 간 우리 모두에게도
정감가는 추억 엘범이 되었다.
마침 길을 나서는 정 교장선생님도
고향이 안동 풍산이고, 안동교대 5 회생이라면서
점심도 자기 제자 집을 안내해 주어
정말 맛있고 정이 담긴 하루를 보낼수 있었다.
바닷가 선창에서
동기 친구와 추억여행을 하면서 나누는 맥주 맛이란
짜릿한 권 선생 첫사랑맛이 아니겠는가?
덩달아 류 길하 교장도 천 세창 사장도
그저 만감이 교차하는 모양이다.
우린 이렇게 늙어가리라...
고향땅에 살면서
추억을 함께하는 친구들과 말이다.
이런 우리에게
권 성명 선생의 인생유전은
살이 되고 피가 되어
우리의 나날을 살찌울게다.
이제 우리는
경제적 여유도,
시간적 공간적 의미도,
그리고 삶의 궤적도
추억속에 빛바랜 사진으로만 존재할것이다.
다만 오늘과 내일을 사는
하루를 보내는 방법에 차이만 있게 되겠지?
그래서 우린
쓰죽회의 정관, 세칙데로
돈도, 시간도, 갖고 있는 재주도
그리고 삶의 그 무엇도
아낌없이 쓰고 죽자는
그 하나의 원칙만
손가락걸고 약속하면서
지는 낙조가 아름다운
구룡포 바닷가,
가장 해를 먼저 맞이한다는
호미곳 해맞이 공원 바닷가를 거닐었다.
붉은 낙조가 아름답듯이
우리의 나날도 아름답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