慶州李氏는 高麗 末에 크게 勢力을 떨쳤고 朝鮮에 들어와서도 文科 及弟者 178名, 相臣 8名, 大提學 3名을 비롯하여 10餘 名의 功臣과 많은 學者와 名臣을 輩出하였다. 8大派 中尙書公派(상서공파)의 白沙(백사) 李恒福(이항복)집안에서 가장 많은 人物을 輩出하였고, 世稱 8鼈(별)집으로 불리우는 益齊公派(익재공파)와 李浣(이완) 大將을 낳은 菊堂公派(국당공파)가 그에 버금간다. 慶州李氏가 朝鮮에 輩出한 相臣·文衡(문형) 가운데 白沙집에서 領議政 4名, 左議政 2名, 大提學 2名이 나왔고, 8鼈(별)집에서 左議政과 大提學 各 1名, 菊堂公派 中의 靖順公(정순공) 李誠中(이성중)後孫에서 左議政 1名이 나와 이들 3派가 事實上慶州李氏의 主軸을 이루었다.
高麗末의 大學者이자 外交家, 文章家,忠臣이기도 했던 益齋(익재) 李齊賢(이제현).(1287~1367)이 高麗 때의 慶州李氏를 代表한다.李齊賢은 忠宣王부터 恭愍王까지 다섯 임금을 섬기며 여러 方面에 功積을 남겼고 文章家였을 뿐만 아니라 卓越한 外交家였다. 朝鮮時代에는 8兄弟가 모두 文章에 뛰어나 8文章으로 꼽히는 朴彭年의 사위인 李公麟(이공린)의 아들들과 壬辰倭亂이 터지자 柳成龍을 도와 兵站 責任을 맡는 等 큰 活躍을 한 李時發(이시발)을 비롯하여,鰲城(오성)과 漢陰(한음
)의 逸話로 有名한 鰲城大監 李恒福은 壬辰倭亂 때 5次例나 兵曺判書를 歷任하여 國亂을 鰲城(수습),戰後 政承에 올라 黨爭 을 막는데 힘쓴 朝鮮時代 4大 名宰相의 한 사람으로 淸白吏에 올랐다. 近代 人物로는 初代 副統領을 지낸 李始榮(이시영)과 財界의 巨木이었던 三星그룹의 李秉喆會長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