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麗時代에 李文著(이문저)는 蔭輔(음보)로 벼슬에 나가 吏部侍郞(이부시랑)
尙書左丞(상서좌승)等을 거쳐 1179年金紫光祿大夫守司空特進尙書右僕射 太子少保(금자광록대부 수사공특진 상서우복야 태자소보()에 이르렀다. 李淳牧(이순목)은 高麗 高宗 때 文科에 及弟하여 左僕射(좌복야)를 지냈고, 李信孫(이신손)은 左庶尹(좌서윤)을 지냈으며,李德孫(이덕손)은 贊成事(찬성사)를 歷任(역임)하였다. 그리고 李承老(이승로)는 忠穆王 때 密直司使(밀직사사)를 지내고 1354年 知密直司使(지밀직사사)에 이어 政堂文學(정당문학)에 昇進한 後江陽伯(강양백)에 封해졌으며, 李云牧(이운목)은 典理判書(전리판서)를 지냈다.
朝鮮 中宗 때의 李福老(이복로)는 1495年 司馬試를 거쳐 1513年 式年文科에 丙科로 及弟하고 奉常寺判官(봉상사판관) 等을 거쳐 草溪郡守(초계군수)를 지냈다. 李允儉(이윤검)은 1472年 武科에 及弟, 宣傳官(선전관)을 거쳐 慶尙左道兵馬節都使(경상좌도병마절도사)를 지냈고,中宗때의 李希閔(이희민)은 1516年別試文科에 及弟, 吏曺正郞을 지냈으며, 李希曾(이희증)은 修撰(수찬)에 이르렀다. 그리고 李希顔(이희안)은 14世 때 司馬試에 合格하여,參奉을 거쳐 高靈縣監(고령현감)으로 赴臨(부임)했으나 곧 辭職하고 故鄕에서 學文에 專心했으며, 李胤緖(이윤서)는 壬辰倭亂 때 義兵을 일으켜 郭再祐와 더불어 功을 세우고 李适(이괄)의 亂때 殉節(순절)하여 刑曺判書(형조판서)에 追贈(추증)되었다. 李台卿(이태경)과 李重弼(이중필)은 李麟佐(이인좌)의 亂에 義兵을 일으켜 功을 세워 原從功臣(원종공신) 1等이 되고, 嘉善大夫(가선대부), 工曺參判(공조참판)에 追贈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