姓氏의 故鄕

臨구 馮氏(임구풍씨) (176).

아까돈보 2010. 3. 15. 23:32

 

 

 馮氏(임구풍씨)
 

▣ 由來

 

 

始祖 : 馮三仕(풍삼사)


始祖(시조) 馮三仕(풍삼사)는 中國(중국) 山東省(산동성)臨口縣(임구현) 사람으로 先祖(선조)는 周(주)나라 文公(문공)의 열다섯째 아들 弼敎(필교)가 秦(진)나라에서 벼슬을 하고 魏(위)나라 후가되고 馮省(풍성)을 食邑(식읍)으로 받아서 姓(성)을 馮(풍)이라고 했다.馮三仕(풍삼사)는 明(명)나라 太學(태학)으로 1645年(朝鮮 仁祖23年) 鳳林大君(봉림대군)(後에 孝宗)과 같이 審陽(심양)에서 明(명)나라 光復(광복)을 圖謀(도모)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9義士(의사)와 같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定着(정착)하여 살면서 故鄕(고향)인 臨口(임구)를 本貫(본관)으로 하였다.

- 墓所는 南楊州市 九里面 兩老里에 있다.

 

▣ 人物

 

 

始祖(시조) 馮三仕(풍삼사)의 曾孫(증손)馮景文(풍경문)이 朝鮮(조선)의 英祖(영조)때 訓練院(훈련원)主簿(주부)를 거쳐 禦侮將軍(어모장군)을 지내고 通政大夫(통정대부)(正3品 堂上官(당상관)의 品階)에 追贈(추증)되었으며, 아들 馮載儉(풍재검)은 宣略將軍(선략장군), 龍驤衛 副司果(용양위 부사과)를 歷任(역임)한 後(후) 嘉善大夫(가선대부), 戶曺參判(호조참판)에 追贈(추증)되어 家門(가문)을 中興(중흥)시켰으며, 馮學祖(풍학조)(馮載儉의 아들)는 僉知中樞府事(첨지중추부사)(中樞府 堂上 正3品 武官벼슬)를 지냈다. 其外(그외) 人物(인물)로는 五衛將(오의장) 馮世柱(풍세주)와 監察(감찰)馮錫驥(풍석기), 副護軍(부호군) 馮世龍(풍세용) 等(등)이 代表的(대표적)이다.


- 馮翊漢(풍익한) 字는 운거, 號는 인재, 朝鮮 將仕郞을 歷任하였다.
- 馮慶文(풍경문) 는 군심, 는 함인당, 朝鮮 때 禦侮將軍 · 訓練院 主簿를 지냈다.
- 馮載儉(풍재검) 는 선지, 는 송암, 朝鮮 때 宣略將軍 · 龍驤衛 副司果를 歷任하였다.
- 馮學祖(풍학조) 는 백소, 는 돈암. 朝鮮 때 龍驤衛 副護軍을 지냈다.
- 馮世鎬(풍세호) 는 주경, 는 죽오, 朝鮮 宣略將軍을 歷任하였다.
- 馮世龍(풍세룡) 는 윤하, 朝鮮 副護軍을 지냈다.
- 馮世鳳(풍세봉) 는 윤상, 朝鮮 副司果를 歷任했다.
- 馮錫龜(풍석구) 는 락첨, 朝鮮 別提를 지냈다.
- 馮錫驥(풍석기) 는 하첨, 는 지암, 朝鮮 때 察訪을 歷任하였다.
- 馮錫鵬(풍석붕) 는 치만, 朝鮮 祕書丞을 지냈다.
- 馮敎淳(풍교순) 성교, 朝鮮 때 醫官을 지냈다.
- 馮鶴淳(풍학순) 는 성선, 朝鮮 때 參奉을 지냈다.

 

▣ 世居地

 

  - 京畿道(경기도) 楊州市(양주시) (접면) 八夜里(팔야리)
 

行列字(항렬자)

 

 
13世
현(鉉)
14世
영(永)
15世
표(杓)
16世
병(炳)
17世
균(均)
18世
종(鍾)
19世
수(洙)
20世
완(梡)
21世
희(熙)
22世
영(瑛)
23世
용(鏞)
24世
원(源)
25世
본(本)
26世
하(夏)
27世
배(培)
28世
용(鎔)
29世
구(求)
30世
화(華)
31世
환(煥)
32世
광(珖)
33世
옥(鈺)
34世
제(濟)
35世
빈(彬)
36世
용(容)
37世
기(基)
38世
련(鍊)
39世
호(浩)
40世
동(東)
41世
-
42世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14世孫은 13代孫)
 

▣ 本貫 沿

 

 

本貫所在地 : 中國 山東省


中國 山東省 靑州府 臨朐縣 地域.
 

▣ 人口數

 

 

通計廳(통계청)의 人口調査(인구조사)에 依(의)하면 臨馮氏(임구풍씨)
1985年에는 總 91家口 361名,

 

2010.  3.  2. 伍民  轉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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