姓氏의 故鄕

載寧 米氏(재령미씨) (287).

아까돈보 2010. 4. 29. 08:16

 

 


 
 載寧米氏(재령미씨)
 

▣ 由來

 

 

始祖 : 米榮盛(미영성)


載寧(재령)米氏(미씨)는 1771年(朝鮮 英祖47年)에 姓(성)을 만들었으나 本貫(본관)의 由來(유래)는 알 수 없다.始祖(시조) 米榮盛(미영성)은 時代(시대)는 알 수 없으나 百戶長(백호장)을 지내고 咸北(함북) 鍾城郡(종성군) 行營(행영)의 都統使(도총사)로 國境警備(국경경비)에 參與(참여)하고 그後(후)에 鏡城(경성)에서 살았다고 한다.後孫(후손)인 米世孫(미세손) 以前(이전)의 文獻(문헌)은 없어졌으므로 米秉濟(미병제)를 1世(세)로 한다고 한다.
 

▣ 本貫 沿革

 

 

本貫所在地 : 黃海道 載寧


載寧(재령)은 黃海道(황해도) 中央部(중앙부)에 位置(위치)하는 地名(지명)으로 高句麗(고구려)때에는 息城(식성)(息城:漢城,乃忽,漢忽)이라불리었다.757年(新羅 景德王16)重盤郡(중반군)으로 改稱(개칭)하였다가,907年(孝恭王11)에 安州(안주)로 고쳤다. 995年(高麗 成宗 14)에 防禦使(방어사)를 두었다가 1018年(顯宗9)에 防禦使(방어사)를 廢(폐)하고 安西都護府(안서도호부)에 隸屬(예속)시켰으며,睿宗(예종)때는 監務(감무)를두었고,1217年(高宗 4)契丹兵(거란병)의 侵攻(침공)을 막은 功(공)으로 載寧(재령)으로 고치고 縣(현)으로

昇格(승격)하였다.1397年(太祖 6)豊州(풍주) 管下(관하) 三支縣(삼지현)을 合(합)하였고, 1415年(太宗15) 1千戶(천호) 以上(이상)의 고을을 郡(군)으로 할 때 郡守官(군수관)으로 昇格(승격)하였다.
 

▣ 人口數

 

 

統計廳(통계청)의 人口調査(인구조사)에 依(의)하면 載寧米氏(재령미씨)는
1985年에는 摠 33家口 107名,
2000年에는 摠 30家口 86名이 있는 것으로 調査(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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