始祖(시조)睦孝基(목효기)의 아들 睦德昌(목덕창)이 1269年(元宗 10) 校尉(교위)로서 逆臣(역신) 崔坦(최탄), 韓愼(한신), 李延齡(이연령) 等이 일으킨 反亂(반란)을 平征(평정)하다가 靈州城(영주성,只今(지금)의 平安北道(평안북도) 義州(의주)에서 殉節(순절)하였으며, 睦德昌(목덕창)의 아들 睦俊平(목준평)은 朝奉大夫(조봉대부)로 秘書尹(비서윤)을 지내고 寶文閣直提學(보문각 직제학)에 이르러 致仕(치사) 했다. 進士(진사) 睦忠達(목충달)의 아들 睦仁吉(목인길)은 恭愍王(공민왕)이 元(원)나라에 있을 때 中郞將(중랑장)으로 侍從(시종)하고, 1359年(恭愍王8) 奇轍(기철)이 일으킨 反亂(반란)을 平征(평정)하여 一等功臣(일등공신)에 올랐다.
朝鮮時代(조선시대)에 와서 始祖(시조)의 11世孫(세손) 睦世秤(목세칭)은 己卯名賢(기묘명현)인 東泉(동천) 金齊(김제)의 高弟(고제)로서 學行(학행)이 뛰어났으나 己卯士禍(기묘사화)로 靜唵(정암) 趙光祖(조광조)를 비롯한 많은 士林(사림)이 禍(화)를 입게 되자 科擧(과거)의 뜻을 斷念(단념)하고 鄕里(향리)로 돌아가 學文(학문)에만 全力(전력)했으며,그의 아들 睦詹(목첨)은 明宗(명종)때 文科(문과)에 及第(급제)하여 工曹參議(공조 참의), 忠淸道觀察使(충청도관찰사)를 지내고, 權臣(권신) 尹元衡(윤원형)의 私請(사청)을 拒切(거절)하였다고 하여 遞職(체직)되었다.
睦詹(목첨)은 膝下(슬하)에 아들 4兄弟(형제)를 두 었는데 그 中(중) 睦瑞欽(목서흠),睦長欽(목장흠), 睦大欽(목대흠) 3兄弟(형제)가 모두 科擧(과거)에 及第(급제)하여 벼슬이 크게 賢達(현달)했으며, 孝行(효행)으로 有名(유명)했던 睦守欽(목수흠)은 그의 淸白(청백)함이 只今(지금)도 逸話(일화)로 口傳(구전)되고 있다.
仁祖(인조)때의 睦瑞欽(목서흠)은 1610年(光海君2) 文科(문과)에 及第(급제)하여 仁祖初(인조초)에 咸鏡道(함경도) 宣諭御史(선유어사)를 거쳐 司藝(사예), 廣州牧使(광주목사 ), 左承旨(좌승지) 等을 지내고 辭職(사직)했다가 丁卯胡亂(병자호란)때 仁祖(인조)를 南漢山城(남한산성)에 護從(호종)했다.뒤에 襄陽府使(양양부사)와 開城府留守(개성부 유수)를 거쳐 參贊官(참찬관),左右承旨(좌우승지),禮曹參判(예조참판) 等을 歷任(역임)한 後(후) 1650年(孝宗 1) 同知中樞府事(동지중추부사)에 올랐다.
光海君(광해군)이 배다른 아우 永昌大君(영창대군)과 仁穆大妃(인목대비)의 아버지 金悌南(김제남)을 죽이려 할 때 左副承旨(좌부승지)로 이를 反對(반대)하다가 淸風郡守(청풍군수)로 左遷(좌천)되었던 睦長欽(목장흠)은 1613年(光海君 5)廢母論(폐모론)이 일어나자 鄕里(향리)로 돌아갔다. 그後(후) 仁祖反正(인조반정)으로 再登用(재등용)된 그는 承旨(승지)와 判決事(판결사), 咸鏡道觀察使(함경도관찰사),慶州府尹(경주부윤)等(등)을 거쳐 1641年(仁祖19)都承旨(도
승지)에 올랐다.
막내 睦大欽(목대흠)은 1605年(宣祖 38)別試文科(별시문과)에 及第(급제)하여 廣州牧使(광주목사)가 되었으나 光海君(광해군)의 亂政(란정)을 慨歎(개탄)하고 벼슬을 버린 後(후) 落鄕(낙향)했다가 1624年(仁祖2)李适(이괄)의 亂(란)에 領議政(영의정) 李元翼(이원익)의 從事官(종사관)으로 功(공)을 세워 禮曹參議(예조참의)에올랐으며 江陵府使(강릉부사)로 나가 善政(선정)을 베풀어 遺愛碑(유애비)가 세워졌고, 特(특)히 詩文(시문)에 能(능)했다.
睦長欽(목장흠)의 아들로 淑夫人(숙부인) 睦大欽(목대흠)에게 入養(입양)된 睦行善(목행선)은 仁祖(인조)때 登科(등과)하여 兵曹(병조)의 佐郞(좌랑)과 (持平지평),修撰(수찬) 等(등)을 지내고 應校(응교)로 謝恩使(사은사)의 書狀官(서장관)이되어 淸(청)나라를 다녀왔으며,大司成(대사성),大司諫(대사간),承旨(승지)
를 거쳐 孝宗初(효종초)에 黃海道(황해도) 觀察使(관찰사)를 지냈 다.
睦瑞欽(목서흠)의아들 睦來善(목내선)은 일찍이 미수 許穆(허목)의 門下(문하)
에서 글을 읽고 孝宗初(효종초)에 文科(문과)에 올라 大司憲(대사헌)과 禮曹(예조) 및 兵曹(병조)의 判書(판서)를 지내고,1680年(肅宗6)에 일어난 庚申大黜陟(경신대출척)으로 한때 削職(삭직)되기도 했으나 己巳換局(기사환국) 때 功(공)을 세워 左議政(좌의정)에 올랐다.
그외 睦長欽(목장흠)의 孫子(손자) 睦昌明(목창명)은 叔父(숙부)인 睦來善(목내선) 과 함께 肅宗(숙종)때 南人(남인)의 重鎭(중진)으로 有名(유명)했으며,睦祖禹(목조우)의 아들 睦萬中(목만중)은 英祖(영조)와 純祖(순조)대에 걸쳐 大司諫(대사간)과 判書(판서)를 지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