姓氏의 故鄕

廣川 董氏(광천동씨) (291).

아까돈보 2010. 4. 30. 23:12

 

 

 
 廣川董氏(광천동씨)
 

▣ 由來

 

 

始祖 : 董仲舒(동중서)


始祖(시조) 董仲舒(동중서,BC179生)는 中國(중국) 한나라 漢武帝(무왕)때 儒學者(유학자)로 이름이 높았던 사람이나 그 後(후)의 世代(세대)는 알 수 없고,董仲舒(동중서)의 42世孫(세손) 博蘇(동박소)에게 3兄弟(형제)(董啓宣, 董承宣,董印宣)가 있었는데 董啓宣(동계선)은中國(중국)에서 벼슬을 하였고,董承宣(동승선)은 明(명)나라때에 接慰使(접위사)로 우리나라에와서 朝鮮開國(조선개국)과 함께 벼슬을 한 後(후) 나라에 功(공)을 세워 永川君(영천군)에 封(봉)해져서 永川郡(영천군)에 살게 되었으며,董印宣(동인선)은 아버지의 親舊(친구) 徐達(서달)이太祖(태조)李成桂(이성계)에게 薦擧(천거)하여 指揮使(지휘사)가 되어 太祖(태조)를따라 戰功(전공)을세워 吏部尙書(이부상서)가 되었다그래서 後孫(후손)들이 董仲舒(동중서)를 始祖(시조)로하고 董承宣(동승선)과 董仁宣(동인선)을 1世祖(세조)로 하고 있다.
 

▣ 人物

 

 

董承宣(동승선)의 孫子(손자)董德蘭(동덕란)은 工曹侍郞(공조시랑)을,玄孫(현손) 董寶夏(동보하)와 董尙夏(동상하)는 工曹典書(공조전서)를 歷任(역임)하여 太子太保(태자태보)에 오른 董學政(동학정,董仁宣의 玄孫)과 함께 家門(가문)을 이었다.한편 董一元(동일원)의 아들 董昌順(동창순)은 安州牧使(안주목사)를 지냈으며, 董大順(동대순)의 맏아들 董漢弼(동한필)은 仁祖(인조)때에 繕工監役(선공감역)에 있다가 丙子胡亂(병자호란)으로 淸(청)나라와의 屈辱的(굴욕적)인 和議(화의)가 成立(성립)되자 悲憤慷慨(비분강개)하며 벼슬을 버리고 智異山(지리산)에 隱居(은거)한 後(후) 累次(루차)에 걸친 朝廷(조정)의 부름에도 不應(불응)하며 子孫(자손)들이 벼슬길에 나가지 말도록 遺言(유언)했다고 한다.董希芳(동희방)의 아들 董應蘭(동응란)은 1624年(仁祖2)副元帥(부원수) 李适(이괄)이 反亂(반란)을 일으키자 鄕兵(향병)을 일으켜亂(란)을 平征(평정)하는데 功(공)을 세워 振武原從一等功臣(진무원종일등공신)에 冊祿(책록)되고

牛峰縣監(우봉 현감)을 거쳐 甲山府使(갑산부사)로 나갔다.
그밖의 人物(인물)로는 龍驤衛副護軍(용양위 부호군)을지낸 董惠震(동혜진)과 五衛都摠府副摠管(오위도총부 부총관)을 歷任(역임) 董廷蘭(동정란)이 有名(유명)했으며,董夏旭(동하욱)은 工曹參判(공조참판)에 올라
護軍(부호군) 董禧景(동희경), 府使(부사) 董基衍(동기연), 縣監(현감) 董鎭鎬(동진호)等(등)과 함께 家門(가문)을 代表(대표)했다.
 

▣ 行列字(항렬자)

 

 
21世
만(萬)
22世
종(宗)
23世
진(進)
24世
병(秉)
25世
목(穆)
모(模)
26世
희(熙)
27世
-
28世
-
29世
-
30世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22世孫은 21代孫)
 

▣ 本貫 沿革

 

 

本貫所在地 : 中國 河北省


廣川(광천)은 中國(중국) 北部地方(북부지방) 河北省(하북성) 棗强縣(조강현)에 屬(속)한 地名(짐명)으로 只今(지금) 北京(북경) 近處(근처)이며, 中國(중국)의 重要(중요) 産業地帶(산어지대)로 有名(유명)하다.
 

▣ 人口數

 

 

統計廳(통계청)의 人口調査(인구조사)에 依(의)하면 廣川董氏(관천동시)
1985年에는 摠 909家口 3,851名,
2000年에는 摠 1,299家口 4,130名이 있는 것으로 調査(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