姓氏의 故鄕

眞寶 趙氏(진보조씨) (382).

아까돈보 2010. 6. 15. 11:14

 

 


 
 眞寶趙氏(진보조씨)
 

▣ 由來

 

 

始祖 : 趙庸(조용)


始祖(시조)趙庸(조용)은 白川趙氏(배천조씨)의 始祖(시조)趙之麟(조지린)의 11世孫(세손)으로 1374年(高麗 恭愍王)文科(문과)에 壯元及第(장원급제)하고,벼슬은 學行(학행)이 卓越(탁월)하였는데 1392年(太祖1年)朝鮮(조선)이 開國(개국)되면서 벼슬에서 물러나 夜珠郡(야주군:醴泉)에 隱居(은거)하자 朝廷(조정)에서는 그의 節義(절의)를 嘉尙(가상)히 여겨 眞寶君(진보군)에 封(봉)하하였다.그가 죽은 後(후) 學文(학문)과 品行(품행)을 追慕(추모)한 後孫(후손)들이 醴泉(예천)에 鄕賢祠(향현사)를 建立(건립)하여 그를 祭享(제사)케 했으며,朝

廷(조정)에서는 禮文館大提學(예문관데제학)을 增職(증직)하였다.
그뒤 後孫(후손)들이 白川(배천)에서 分貫(분관)하여 眞寶(진보)를 本貫(본관)으로 하였다.
 

▣ 人物

 

 

朝鮮時代(조선시대)에 評事(평사)를 지낸 趙耳(조이)를 비롯하여 縣令(현령)을 지낸 趙聃(조수),兵馬節度使(병마절도사)를 지낸 趙聽(조청),錄事(녹사)를 지낸 趙克仁(조극인),司直(사직)의 趙文行(조문행),僉節制使(첨절제사)의 趙武行(조무행) 等(등) 官僚(관료)들을 輩出(배출)하였다.
趙瑄(조선)은 都護府事(도호부사)를 지냈고,趙忠俊(조충준)은 萬戶(만호)를 지냈으며, 趙忠傑(조충걸)은 副護軍(부호군), 趙立(조립)은 僉知中樞府事(첨지중추부사)를 歷任(역임)하였다.

 

▣ 科擧及第者(朝鮮時代)

 

  趙壽天(조수천) (1544 甲辰生) : 武科宣祖17年(1584) 別試 丙科
趙禹(조우) (1544 甲辰生) : 司馬試 成宗14年(1483) 式年試 三等
趙勘(조감) (1544 甲辰生) : 司馬試 中宗26秊(1531) 式年試 三等
等 모두 3명의 科擧及第者가 있다.
(武科 1名, 司馬試 2名)

▣ 世居地

 

  -京畿道 安城郡 孔道面 中茯里
-忠南 天安市 笠場面 加山里, 龍井里
-忠北鎭川郡佰谷面大門里

 

▣ 本貫沿革

 

 

本貫所在地 : 慶尙北道 靑松


眞寶(진보)는 慶尙北道(경상북도)靑松郡(청송군)에 있는 地名(지명)으로 新羅 (신라)때에는 漆巴火縣(칠파화현)이라 하다가 757年(新羅景德旺16)에 眞寶縣(진보현)으로 고치고,聞韶郡(문소군:義城)의 領縣(영현)을 삼았다.高麗(고려) 太祖(태조)때 眞安縣(진안현)과 合(합)쳐 甫城府(보성부)로 改編(개편)하였다. 1018年(顯宗9) 禮州(예주:寧海)에 編入(편입)시켰는데 倭寇(왜구)로 因(인)해 그 地方(지방)을 비워 두었다가 朝鮮(조선)太祖(태조)때 縣(현)을設置(설치)하였다.世宗(세종)때 靑鳧(청부)를 合(합)하여 靑寶郡(청보군)이라 하다가 眞寶(진보)로 고쳐 縣(현)으로 삼았다.1474年(成宗5)靑松(청송)에 編入(편입)하였다가, 1478年(成宗 6) 다시 復舊(복구)하였다.1895年(高宗32)에 地方制度(지방제도) 改正(개정)으로 眞寶郡(진보군)이 되었고,1896年慶尙北道(경상북도)에 移屬(이속)되었다.1914年 郡面廢合(군면폐합)으로 東面(동면)과 北面(북면

)은 英陽郡(영양군)에 倂合(병합)되었고,나머지는 靑松郡(청송군)에 編入(편입)되었는데 그 中心地域(중심지역)은 眞寶面(진ㅂㅂ보면)으로 남아 있다.
 

▣ 人口數

 

 

統計廳(통계청)의 人口調査(인구조사)에 依(의)하면 眞寶趙氏(진보조씨)는
1985年에는 摠 168家口 734名, 調査(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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