姓氏의 故鄕

安東 曺氏(안동조씨) (397).

아까돈보 2010. 6. 23. 00:29

 

 


 
 安東曺氏(안동조씨)
 

▣ 由來

 

 

始祖 : 曺碩材(조석재)


始祖(시조)曺碩材(조석재)는 朝鮮(조선) 正祖(정조)때 戶長(호장)을 지냈다고 增補文獻備考(증보문헌비고)에 傳(전)해온다.
本貫(본관)의 由來(유래) 等(등)에 對(대)해서는 알 수 없다.

 

▣ 本貫沿革

 

本貫所在地 : 慶尙北道安東

 

安東(안동)은 慶尙北道(경상북도) 南東部(남동부)에 位置(위치)한 地名(지명)으로 古代(고대)에는 昌寧國(창녕국)인 小國(소국)이었다.新羅(신라)가 이곳에 進出(진출)하여 古陀倻國(고타야국)으로 불렀고, 757年(景德王16)에 高敞郡(고창군)으로 改稱(개칭)하고,直嶺縣(직령현)·日谿縣(일계현)·高邱縣(고구현)을 領賢(영현)으로 管割(관할)하였다.
940年(高麗 太祖23)에 安東府(안동부)로 昇格(승격)되었다가 後에 靈駕郡(영가군)으로 降等(강등)되었고,995年(成宗14) 行政區域(행정구역) 改編(개편)때 吉州(길주)로 昇格되었다.그 뒤 몇 次例의 變化를 거쳐 1030年(顯宗21)에 安東府로 이름이 바뀌었다. 1197年(明宗27)에 都護府(도호부)로 改稱되었고, 1204年(神宗7)에 大都護府(대도호부)로,1308年(忠宣王卽位)에 福州牧(복주목)으로繼續(계속) 昇格(승격)되었으나,1310年(忠宣王2)에 福州(복주)로 降等(강등)되었다.1356年(恭愍王5)에 다시 牧(목)으로 昇格(승격)되었으며,1361年에 다시 安東大都護府(안동대도호부)로 昇格(승격)되었다.1383年(禑王9)에는 安東都(안동도)로 改編하였다가 1388年에 副使로 還元하였다.朝鮮時代(조선시대)에도 安東大都護府(안동대도호부)로서 慶州(경주)와함께 慶尙左道(경상좌도)
의大邑(대읍)으로 政治(정치)·行政(행정)·文化(문화)의 中心地(중심지) 役割(역할)을 하였다.石陵(석릉)·古寧(고령)·花山(화산)·綾羅(능라)·地平(지평)·一界(일계)·古藏(고장) 等의 別號(별호)가 있었다.
1895年(高宗32)地方制度改正(지방제도 개정)으로 安東府(안동부) 安東郡(안동군), 1896年에 慶尙北道(경상북도) 安東郡(안동군)이 되었다.1931年 邑面制(읍면제)를 實施(실시)함에 따라 安東郡(안동군) 郡內面(부내면)이 安東邑(안동읍)으로 昇格(승격)되었으며,1963年에 安東邑(안동읍)이 新安東市(신안동시)로 昇格(승격)되었다가 곧 安東市(안동시)로 改稱(개칭)하였다. 1995年安東郡(안동군)이 安東市(안동시)에 統合(통합)되었다.

 

▣ 人口數

 

 

統計廳(통계청)의 人口調査(인구조사)에 依(의)하면 安東曺氏(안동조씨)는
1985年에는 摠 65家口 285名,
2000年에는 摠 420家口 1,266名이 있는 것으로 調査(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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