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감동시킨 안동여인 사랑
400여년전 조선의 안동여인 사랑
우릴 울린 맑고 지순한 안동여인 사랑
아래의 이야기는, 1998년 4월
경북 안동의 고성(固城) 李氏의 무덤 유물발굴에 직접 참가한
임세권 교수가 무덤 속에서 발견해낸 `원이 엄마`의 사부곡을 세상에 알리면서 후술한 이야기로서,
ATAI가 본문 가운데에 아주 많이 등장하는 `그리고` 단어 등등 극히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편집한
것임을 밝히는 바입니다.
육척 장신의 건장한 체격에 턱수염이 단정한 준수한 얼굴을 가진 젊은이는 입을 꽉 다문 채로 말없이 누워 있었다. 그의 나이는 서른 한 살이었다.
원이 아빠의 무덤을 발굴하고 있다
그에게는 예쁜 아내와 귀여운 아들이 있었고 아내의 뱃속에는 또 하나의 아기가 들어 있었다.
건장하던 젊은이는 갑자기 병이 들었고 얼마 동안를 병석에 누어 있었던 듯 하다.
아내는 남편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늘 천지신명께 기도하고 자기의 머리를 잘라 신을 삼았다.
그러나 젊은이는 그 신을 신어보지도 못하고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 젊고 예쁜 아내는 눈앞이 캄캄했다.
그들 부부는 그 일대에서도 소문날 만큼 금슬이 좋았고 집안도 넉넉하여 인근의 부러움을 독차지했을 법했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은 원이 엄마의 삶을 의미없게 만들어 버렸다. 함께 따라 죽고만 싶었다.
귀여운 자식이 있고 뱃속에는죽은 남편의 씨가 아직도 자라고 있었다.
지금까지 자기를 사랑하던 사람 대신에 남편이 남겨놓은 자식들을 보며 마음을 새롭게 다져 살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제 남편이 관속에 들어가고 집을 떠나면 영원히 그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었다.
아내는 남편이 아껴하던 물건들과 평소 입던 철릭이며, 직령, 단령 등 옷가지를 정성스레 챙겨서는 저승으로 갈 남편에게 입히고 또 여벌의 옷도 싸 놓았다.
자기가 입고 있던 옷 중에서 남편이 특별히 예쁘게 보던 꽃무늬 비단 저고리와 치마, 또 나들이할 때 머리를 가리던 명주 장옷도 차곡차곡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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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을 닫으려는데 남편이 애지중지 귀여워하던 아기 저고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그것도 꺼내 함께 챙겨서 자기 옷과 함께 관속에 누운 남편 가슴 위에 얹었다.
이제 그는 저승에 가도 혼자가 아닐 것이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귀여운 아기를 가슴에 안고 함께 길을 떠나니 그는 세상을 달리 했어도 외롭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아내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졌다 정신을 가다듬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이 안동 고을에서 누구누구 집 하면 모르는 이 없는 훌륭한 문중 며느리로 들어와 살았기에 겉으로라도 의연한 모습을 보여야 했다.
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혔고 작은 종이 한 장을 펴놓고 먹을 갈았다. 평소 남편이 쓰던 붓을 집어들었다.
이 집에 시집와서 남편 사랑 받으며 지냈던 시간들이 두루말이처럼 펼쳐졌다
한 이불 속에 누워서 속삭이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귓전에 살아 맴돌았다.
앞으로 살아야 할 날들을 생각하니 슬픔이 복받쳐 올라왔다.
아내는 천천히 붓을 움직여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자고 하셨지요?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다른 사람도 우리 같이 어여삐 여기고 사랑을 할까요?
꿈속에서라도 당신을 만날 수 없을까요 ?
- 우리가 상상하는 원이네 가족, 조선시대의 안동 양반집안 -
당시의 신랑 이응태는 키가180, 원이 엄마는 165정도 였다.
원이는 5살정도이고, 둘째는 배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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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년 전 사부곡' 세계가 감동
원이 아버지에게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을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 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 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 들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병술년(1586)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 -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신을 만들어 죽은 신랑 가슴에 넣은 신발
국립 안동대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미투리(사진)’ 한 켤레가 세계적 잡지인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게재됐다.
20일 안동대박물관에 따르면 16세기에 만들어진 미투리 한 켤레 사진이
‘사랑의 미투리’라는 제목으로 내셔널 지오그래픽 이달호에 소개됐다.
이 미투리는 1998년 4월 안동 정상동 고성 이씨 분묘에서‘원이 엄마’의
한글 편지와 함께 출토됐던 것으로 마(麻)와 머리카락을 섞어 짠 짚신형 신발,
즉 마혜(麻鞋)이며 길이 23㎝, 볼 너비 9㎝가량이다.
출토 당시 미투리는 한지에 싸여 있었는데 죽은 남편을 위해 아내가 머리카락으로
짠 사실이 드러나면서 애틋한 부부애를 느끼게 해 주었다.
미투리 사진은
온라인(내셔널 지오그래픽 한국판:http://www.nationalgeographic.co.kr)으로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안동여인
23개 언어로 28개국에서 동시 발행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이
안동대 박물관에 전시된 미투리 한 켤레를 주목했다.
안동대에 따르면 16세기에 만들어진 미투리 한 켤레의 사진과 사연이 '사랑의
미투리'라는 제목으로 내셔널 지오그래픽 11월호에 실렸다.
16세기에 만들어진 미투리 한 켤레가 애절한 편지와 함께 발굴돼 한국인의 심금을 울렸다.
1586년 6월 1일 지금의 안동시 정상동 지역에서
살던 임신한 과부가 사별한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시더니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그녀는 병든 남편의 쾌유를 빌기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과 삼 줄기를 한데 삼은 미투리를 편지와
함께 남편의 무덤에 묻었다.
이처럼 오랜 세월 묻혀 있던 유물들이 안동시 정상동 택지개발 작업 중에 발굴됐다.
편지에는 시공을 초월하는 그녀의 사랑이 담겨 있다.
'꿈에 몰래 와서 모습을 보여 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소이다'.
당시 시어머니도 남편과 같은 역병으로 돌아가셨다.
이 편지를 소재로 한국에서는 소설 두 권과 다큐멘터리 한 편이 제작되고 무덤 자리엔 여인의
동상이 세워졌다. 수많은 한국인과 일본인 관광객이 편지의 사본을 구입했다.
이들의 사랑을 주제로 오페라를 연출 중인 박창근 교수는 "편지의 내용이 시대를 초월해
지금도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고 말했다.
이 미투리는 1998년 안동시 정상동 고성이씨 무덤에서 '원이 엄마'의 한글 편지와 함께
출토된 것으로 마()와 머리카락을 섞어 짠 짚신형 신발로 길이 23㎝, 볼 너비 9㎝가량이다.
출토 당시 미투리는 한지에 싸여 있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118년 전통의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잡지로 영어와 한국어.
프랑스어.독일어.히브리어.중국어 등으로 발행되고 있다.
400년전의 사부곡
70년대의 안동 여인들
안동시는 님의 아름다운 사랑을 기려 안동보조댐에 월영교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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