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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 영락 황제와 안동 권씨의 여인.

아까돈보 2010. 12. 8. 07:39

 

 

 

 

명의 영락 황제와 안동 권씨의 여인
     
명성종 朱棣(주제?) 영락 황제 는 조선 여성을 세번이나 안해 로 맞이 하였다.
영락6년에 조선 서울에 사신을 보내여 5명의 조선 여성을 골라서 가져 왔다.
그들속에 후에 현비贤妃 가 된 권씨를 포함하여 5명이 였다.
명사에《明史•后妃传》에 권씨가 조선 여성으로 유일 하게 기록 되엿다.
恭献贤妃权氏,朝鲜人。永乐时,朝鲜贡女充掖庭,妃与焉。姿质穠农粹,善吹玉箫。帝爱怜之。七年封贤妃,命其父永均为光禄卿。明年十月侍帝北征。凯还,薨于临城,葬峄县。
《공헌 현비 권씨는, 조선사람이다. 영락 년간에 조선에서 여성을 조공하여
비빈들의 심부름을 하였는데 현비도 그속에 있었다, 자질이 아름답고
옥소(옥으로 된 피리)를 잘불었다, 황제가 사랑하였다.
7년에 현비로 봉하였고 그의 부친 권 영균은 광록대부로 봉하였다.
이듬해 시월에 황제를 모시고 북정하였는데 개선하고 돌아 오는 길에
림성에서 죽었다,역현에 뭍히였다, 》
조선왕조 실록에서는 고려시기 고려에서온 환관들이 비상으로
독살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왕조 실록을 보며는 영락 황제가 권비에 대한 애정이 아주 깊었다.
《태종 21권, 11년(1411 신묘 / 명 영락(永樂) 9년) 3월 29일(기축) 1번째기사
〈현인비 권씨에 대한〉 황제의 대우 가 전일(前日)에 비하여 갑절이나
후하였으니, 황제께서 말씀을 내리실 때 눈물
을 머금고 슬피 탄식하여, 능히 말을 잇지 못하였다.》
영락 황제는 죽을 때까지 권현비를 잊지 못하였다고 한다.
“朕老矣,食饮无味”,“权妃生时,凡进膳之物,惟意所适;死后,凡进膳、造酒,若浣衣等事,皆不适意。”
《짐이 늙었도다. 식음이 아무 맛도 없다, 권비가 살았을때 먹는 음식이 모두 나에게
맞았는데 그가 죽은후 음식이나, 담근 술, 빨래등이 마음에 들지 아니한다.》
두번째의 조선 여성은 정씨 이다,
제삼차는 조선 여성은 한씨와 황씨 및 수행한 6명의 여인들이다.

그런데 영락황제에 대한 중국 역사계의 쟁론이 있다.
그것은 영락황제의 생모 주원장의 후궁 이씨는 조선 여성이라는 것이다.
정사에서는 모두 주원장의 본댁 마황후의 자식이라 되여 있지만
마황후는 생육을 하지 못하였고 후궁의 비빈들이 낳은 자식을
제 자식이라고 키웠다는 것이다.
중국 문혁때 죽은 역사가 오함이 주요로 주장한 사람이다.

내가 볼바에 영락황제가 조선 여인의 만든 음식과 술을 좋아하며
하다못하여 빨래도 조선여성이 한것을 좋아 하였다 하니
아마 어려서 생모의 영향을 밭지 않았나 생각하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