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자료집

청계천의 옛모습.

아까돈보 2011. 2. 13. 19:33

 

 

청계천의 옛모습
하단에 표시하기를 클릭 하세요.

https://t1.daumcdn.net/cfile/blog/185778284CBAD8C25D 

청계천 돌다리의  사진과 사연들을 모아 
  

 

     

 

 

도성 내에서 가장 다리로 경복궁-

육조거리ㅡ 종루ㅡ 숭례문으로 이어져 남북대로를

연결하는 도성 중심통로였고  주위에는 많은 상가들이

 있어 서울 상업의 중심지 역할을 했고 도성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왕래했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155778284CBAD8C15B

 

닭과 계란을 파는 가게, 갓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대나무를 파는 가게, 갓을 파는 가게, 부인의 머리 장식을

파는 가게, 부인들의 패물과 가락지 등을 파는 가게, 신발을 파는 가게,

물감과 중국 과실을 파는 가게, 칠목기와 장롱을 파는 가게, 잔치

 그릇을 세놓는 가게, 채소를 파는 가게, 솜을 파는 가게, 말총·가죽·

··휴지· 잡화를 파는 가게, 말안장·등자·굴레 등을

파는 가게, 서화와 책을 파는 가게 등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던 곳이었습니다.

 

 보신각이 있는 종로 네거리에서

을지로네거리 방향으로 나아가다가 청계로와

만나는 길목에 있고 조선시대 광통방(廣通坊)

있던 다리였으므로  대광통교(大廣通橋)

라고도 했습니다.

 

아래 영분자 주소를 클릭하시면 자세한

사항을 보실 있습니다.

 

 

조상의 얼이 새겨진 정능의 청계천 돌다리 광통교

 

 

http://blog.daum.net/jc21th/17780572

 

 

  https://t1.daumcdn.net/cfile/blog/165778284CBAD8C159

 

 

          

 

중구 수표동 43번지와 종로구 관수동

20번지 사이청계천 위에 놓여 있던 다리로

홍수를 방지하기위해 수심을 측정하는 수표석주

(水標石柱) 세웠는데 지주는 보물 838호로

 지정되어  세종기념회관 안으로

옮겨졌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202DEF114CBAD7DD45

 

https://t1.daumcdn.net/cfile/blog/162DEF114CBAD7DC42


위는 보물 838호로 지정된 수표석주(水標石柱)이고

아래는 수표교와 함께 촬영된 사진입니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182DEF114CBAD7DD43

 

https://t1.daumcdn.net/cfile/blog/192DEF114CBAD7DD44

 

 

아래는 장춘단 공원으로 옮겨진 뒤의 수표교 입니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152DEF114CBAD7DC41

 

 

  

 

       

 

중구 장교동 51번지와 종로구 관철동

 11번지 사이 청계천에 놓였던 다리입니다

  일대는 일찍부터 도성 상업의 중심지가 되어

시전상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며, 중앙과 지방 관청의

연락사무를 맡아 보던 경주인(京主人)들의

 본거지였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132DEF114CBAD7DE4A 

https://t1.daumcdn.net/cfile/blog/142DEF114CBAD7DE4B

 

 

 

         

 

 청계천 물줄기가 도성을 빠져 나가는

지점에 놓여 있던 다리로 서울에 성곽을 쌓으면서

청계천 물이 원활하게 흘러갈 있도록 다섯 개의 아치형으로

 구멍을 만들었고, 위로 성곽을 쌓아 올렸으며, 아치 모양의 구멍을

 서로 연결해서 성벽 안쪽으로 장대석을 연결한 다리입니다.

  

  동대문 옆의 오간수문은 물길이 빠져가기 위해

가설한 다리로 조선시대에는 도성 안에서 죄를 지은 자가

 도성을  빠져 달아나든가 혹은 밤에 몰래 도성 안으로 잠입하는

사람들의 통로로 곧잘 이용되기도 했고 명종 전국적으로 사회를

흉흉하게 만들었던 임꺽정의 무리들이 도성에 들어와

전옥서를 부수고 도망갈 때도 이곳으로 났습니다.

 

 1907 일제가 청계천 물이 흘러가도록

한다는 미명하에 오간수문을 모두 헐어버릴 함께

사라지고 콘크리트 다리로 교체되었다가 후에 성곽이

훼손되면서 자취를 찾아볼 없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142DEF114CBAD7DE48

 

 

 

밖에 청계천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올립니다.

 

 아래사진은 일제 강점기 경복궁 동편에 옮겨진

공화문인데 청계천에 걸려있는 사진을 감상 하시던 분들이

자하문이라며 얘기를 나누시는 모습을 보고 사진의 사연을

설명했더니 숙연한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145778284CBAD8C058

  

https://t1.daumcdn.net/cfile/blog/165778284CBAD8C15C

    

https://t1.daumcdn.net/cfile/blog/142DEF114CBAD7DC40

  

https://t1.daumcdn.net/cfile/blog/122DEF114CBAD7DD47

 

 

https://t1.daumcdn.net/cfile/blog/172DEF114CBAD7DF4D

 

https://t1.daumcdn.net/cfile/blog/182DEF114CBAD7DF4E

 

              

 

 

 

  

'중요자료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화(梅花) 이야기.  (0) 2011.02.16
한국역사 : 조선왕조계보.  (0) 2011.02.15
24절기(節氣).  (0) 2011.02.09
세계 화폐.  (0) 2011.02.05
박정희의 독도, 김일성의 백두산.  (0) 2011.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