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는 내동기들

친한 친구사이 주고 받은 메일(진구/作).

아까돈보 2011. 3. 2. 21:46

 

 

 

 

 

 

문득 봄이 오는 소리를 듣고

밤잠을 깨우고 뒤척이는데

차라리 이 밤을 친구들하고나 보낼려고

노트북을 꺼내어 이곳저곳을 뒤적이는데

 

안 용진 군의 글 하나가 눈에 띄어서

요즘 통 소식이 없길래 수소문 했더니

아프다고만 하고 더 묻지는 말라고 하니

 

늙으면 아프기 마련이지 싶어 더 캐묻지는 말고

그 친구 워낙 평생을 열중하고 침잠해서 살더니

아픈것도 그리 열중하는가 싶은데,

 

새해, 새봄이 왔으니

 

훌훌 털고 일어나라고

그 친구 글 한편을 여기 올려본다.

 

 

참고로 너무 개인적인 글이고

< 우째 댓글 한마디가 없노!!  혹시 내가 "왕따"??? >라고

 

그친구 제 스스로 댓글을 달았던 터라

붙혀올리기 주저되지만

이 시점에 한번 읽어봐 주는것도 좋으리라 충동되어서

마구마구 올리는 것이니 해량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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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사11회 친구들에게!!  안녕하신가. 처음처럼님의 글과 사진(막 자갈)을 보셨는가. 나는 크게

감명을 받고 다음과 같이 한 편의 글을 썼다네. 어디엔가 발표할 예정이네. 참고로 한 번

읽어 봐 주십사하고 여기에 올려보네.  

 

 

큰 구슬이 보물이 아니다. (尺璧非寶)      

                                                                                        세무사  안 용 진

  글이라는 것은 아무렇게나 써지는 것은 아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하고 읽는 사람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文人도 아니고 더더욱 作家는 아니다. 그러나 가끔 心情의

일단을 한편의 글로 써보고 그것을 발표도 한다. 친구나 知人이 읽고 재미있고, 괜찮다고

 듣기 좋게 말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쉽게 술술 써지는 것은 아니다. 대장장이가

풀무질을 하고 망치로 쇠붙이를 두들기고 다듬기를 수없이 하여 하나의 연장이 만들어

지듯이 한 편의 글이 탄생하기에는 수없는 생각과 마음의 땀방울이 맺어져야하는 것이다.

 하지만 생활수필은 억지로 꾸미고, 기교를 부린다고 되는 것은 아니고, 우선 문득 쓰고

싶은 충동이 있어야하고 짙은 삶의 흔적이 배어 있어야 한다. 

  최근 PC를 통해 안동에 있는 친구의 간단한 글과 몇 장의 사진을 접하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안동을 대표하는 문화계 인물로 名門의 후예이지만 儒學이 아닌 천주교에

일생을 봉사한 이 시대에 걸 맞는 선비이고 양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사범학교 동창생

중에서 제일 선두주자였었다. 하나 전도유망한 교직을 그만두고 천주교의 실무자겸 행정가

로 헌신하였고 이제 안동 문화를 위하여 여생을 힘쓰고 있다.

  오래전 그가 존경하던 주교님이 은퇴하면서 그에게 큰 선물을 남겼다. 그것은 낡은

가방에 가득 담긴 막자갈이었다. 사진으로만 보아도 아무 볼품없는 강변에 흔한 주먹돌

들이었다. 받을 당시 그는 크게 실망을 하였으리라. 아무렇게나 지하실 구석에 방치하였

다고 한다. 친구는 근래 이국땅 벽촌에서 팔순을 맞으시는 벽안(碧眼)의 주교님을 뵙고

그 선물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한다. 보잘 것 없는 막자갈 돌들이 이제 그에게는 천금과 바꿀  

 수 없는 가보가 된 것이다.

  사연인즉 청년의 신부로 한국에 파견되어 아름다운 황혼을 보내고 있는 주교님의 혼이

담긴 것이 바로 그 돌들이었다. 선진국인 프랑스에서 신부의 지위는 최고 지성인에 속할

것이다. 이국의 벽촌에서 홀로 희생과 봉사의 성스러운 생활을 하는 그에게도 때로는 회의

하고 번민함이 없지 않았으리라. 물론 凡人과는 다르겠지만 그래도 한 인간으로 벽에

 부닥치고 고민하며 곰곰이 뜬눈으로 밤을 새는 일도 수없이 있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그는 차를 몰고 안동부근 아무 곳이나 달려 한적한 강가에서 홀로 사색에 잠기고 고민하고

지혜를 구하며 간절히 기도를 하였나보다. 주교의 지위에 오른 인물이면 최고의 지성이고

철학자임에 틀림없다. 생각을 생각하였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乖離)속에서 구도자의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으리라. 찬 이슬을 맞으며 외로이 이름 모를 강바닥에서 밤을 새워 기도

하는 聖職者를 상상해보라. 자신을 알고, 지혜를 얻고, 하느님의 계시를 받았으리라. 그

때마다 그는 옆에 있는 아무 돌이나 하나 집어 들고 돌아온 모양이다. 그렇게 모아온 돌이

낡은 손가방에 하나 가득이 된 것이다. 돌 마다 그곳 지명을 적어 두었지만 그렇지 않았어도

그는 그 돌을 보면서 그때의 고뇌와 사연들을 생생히 기억하면서 마음을 다잡았을 것이다.

하나를 집어 올 때 마다 그의 영혼은 더욱 맑아지고 청순하여졌으리라. 그러한 사연이 담긴

막자갈을 내 친구에게 물려준 것이다. 주교라면 萬民이 존경하고 우러러보는 偉人이지만

그가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그 돌밖에 무엇이 또 있으랴. 하니 이보다 더 값진 보물이 어디

있겠는가. 

   佛家의 스님들은 先師의 의발(衣鉢)을 물려받는 것을 제일의 영예로 생각하나보다. 스승의

손때가 묻은 가사(袈裟)와 바리때가 무슨 경제적인 가치가 있겠는가. 하나 그것은 佛法을 전해

받는 상징이기 때문에 값이 없는 보물이 되는 것이 아닐까?  내 친구는 성직자는 아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사연이 담긴 막자갈을 물려받았으니 그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 있겠는가.

주고  받음이 世俗과 다름이고 情의 징표이며 두 분의 인품을 짐작하게 하는 것이다.

각설하고 나에게도 보물이 있다. 그것은 낡고 허름한 책 세권이다. 제일 큰 보물은 20여년 전

지하철 가판대에서 산 5,000원 짜리 『孟子』이다. 지금이야 맹자에 관한 책 만하여도 수십

이고 비싸고 귀한 것도 많지만 그 때는 달랑 그 책뿐이었다. 약 3년을 읽고 또 읽었다.

책 표지만도  여러 번 갈아 끼웠다. 손때가 묻을 대로 묻고 낡을 대로 낡은 보잘 것 없는

책이지만 내게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중한 물건이다. 내 학문의 기초가 되었고

生의 좌표를 설정한 것이기에 그렇다. 지금도 그 책을 접하면 눈물이 핑 돌고, 페이지마다에

내 20년 생애의 애환이 파노라마처럼 펼처진다. 다음은 1,000원 짜리 문고판『율곡의 철학사상』

이다. 분량도 많지 않고 한 손에 쏙 들어오지만 어렵고 재미라고는 먼 책이다. 지금까지 열두 번을

精讀하였다. 理와 氣에 대하여 눈을 뜨게 한 책이고 앞으로도 얼마를 더 읽고 생각하여야 할지

모른다. 근래에 구입한 “하룻밤의 지식여행” 『철학』이라는 책은 5,800원 짜리 조그만 책이다.

철학박사라는 사람이 읽고 있다고 말하기는 부끄러운 아주 초보 단계의 서양철학의 흐름을

망라한 책이다. 한 번 읽는데 한나절이면 족하다. 자투리 시간에 읽다가 말다가를 반복하면서

현재 28회째 읽고 있는 중이다. 내 서재에는 제법 많은 책이 있지만 내가 즐겨 읽고 손때가 묻은

책은 위의 세권이고 그것이 나의 자산이자 보물이라 할 것이다.

  나는 四書三經에 통달은 못해도 어느 정도 감은 잡고 있다. 허지만 아직도 어려우면서 매력이 있고

 애틋한 향수에 잠기게 하는 것은 역지 천자문이다. 한 번 외어서 흥얼거리다가 한두 달 지나면

잊어버린다. 다시 몇 번 큰 소리로 깨우쳐 주어야 하는 것이 천자문에 대한 나의 예우이다.

그 속에 “尺璧非寶, 寸陰是競”이라는 구절이 있다. “척벽비보요 촌음시경하라” 누구나 어렸을 때

한 두 번 외어보아서 기억이 될 것이다. “한 자 되는 구슬이 보물이 아니요, 한 치의 광음(시간)을

다투어야 한다” 는 뜻이 아니겠는가. 『大學』에서는 “초나라는 보배로 삼는 것이 없고 오직 善人을

보배로 삼는다”고 하였고,  구범이라는 사람은 “보배로 여기는 것이 없고, 어버이를 사랑함을

보배로 여긴다”라고 하였다. 조선 초기 안동 출신의 대학자 김계행은 “우리 집에는 보물이 없고,

오직 보물이라면 淸白이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그렇다 보물이라는 것은 값으로 따져지는 것은

아니다. 남에게는 비록 보잘것없지만 자기의 혼이 서리고 정신이 응어리진 것이라면 보물이

아니겠는가. 그것을 돈의 교환가치로 따진다면 우리의 삶이 너무 팍팍 하지 않겠는가. 어쩌면

돈을 들이지 않고 자기만의 보물을 마련하는 것이 경제적이고 영혼이 부자인 삶이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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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을 맞은 두봉 주교님이 이웃에 계셔서

축하 인사도 드릴겸 문안을 드리기위해 도리원 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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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이야기지만  69 년 말

안동시내 안동 중앙국민학교에 교사로 근무하던중

나는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새로 안동에 대학을 설립하는데

그 일을 맡아 줄수없느냐는 제의 였다.

교육청에 근무한 나의 경력과 교사로서 시내에 가까이 있는데다가

프랑스 신부님과 룩셈부르크 수녀님들이 만드는 학교여서

천주교 신자인 내가 도움된다는 것이었다.

쉽게 직업을 바꾼다는게 고민되고

교사로서 한창 꿈을 키워가던 때인지라 주저가 없진 않았지만

가톨릭신자로서 나를 필요로 한다는데 어쩌겠는가 하는 용기로

10 년 교직을 떠나 새로 인연을 맺은게 가톨릭상지대학이었고

거기서 재단 이사장으로 계신 두봉주교님을 만난게,

 귀중한 평생인연이 되었다.

 

이젠 참으로 많은 나날이 쌓인 지난 이야기가 되었지만

그 나날만큼 켜켜히 쌓인 값진 추억도 많고 많다.

 

그 가운데 오늘 생각나는 특별한 사연은

우리집 가보가 되어 있는 막자갈 선물 이야기이다.

나와  함께 계시던 두봉 주교님이 22 년의 임직을 갑자기 그만 물러나시면서

이젠 한국인에게 자리를 물려 주어야 한다면서 재단 이사장 자리를 물러나신것이다.

마지막으로 떠나시기 전날 ,  나를 보자시면서 호출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하 떠나시면서 이별 만남을 하려시나보다하고,

마지막 나에게 줄 선물이 있어서 보자고 하니 기대가 컸었다.

그런데 보자마자 선물이라고 주시는 자그마한 빽은

나의 기대와 그 모습부터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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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묵직하고 떠나는 마당에 주시는 워낙 진지한 선물이라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받아와서 문화회관에 와서 열어 보았더니

아! 글세,     막 자갈이 하나 가득 들어 있지 않은가?

하도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혀,    관리 기사를 불러 지하 보이라실에 가져다 두든지

버려도 좋다고 하고 막자갈 선물을 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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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몇해가 지난 어느날,    갑자기 자갈 선물 받은게 생각이 나서 찾아봤더니

용케도 버려지지 않고 ,  지하 보이러 실에 처박혀 있었다.

그 때야 왜 하필 마지막 이별 선물로 이 자갈을 주셨는가 곰곰 생각해 보았다.

빽을 열어 찬찬히 살펴보니, 

   자갈 마다 안동, 예천, 진보 , 왜관 등등 지명이  쓰여 있었다.

그제서야 무릅을 칠 정도로 그게 무슨 자갈인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

벼락을 맞은듯 충격으로 와 닿는것이었다.

 

그 분은 풀리지 않는 고민스러운 일이 있거나

정말로 막막할땐 마당을 거닐며 (거닌다기 보다 왔다갔다 하면서 )

 기도 하는게 버릇이었는데

그래도 매듭이 풀리지 않으면 차를 몰고 나가셔서,  냇가에 가셔서 강변을 걸으며

생각하고 또 골똘히 생각하면서,   기도 가운데 지혜를 비는 적이 많은데

이 자갈은 그때 속을 삭이며 하나 둘 줏어 오신 것이었다.

 

아직도 그 분이 직접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지만

너도 나중에 고민스럽거나 꽉 막힌 심정이 되었을땐

이 자갈을 보고 마음을 달래고 지혜를 얻으라면서

마지막 소중한 선물을 주신것으로 알아듣게 되었다.

가장 절박한 심정이었을때 줏은 자갈이니 그 무엇보다 소중하지 않겠는가?

 

그 이후로 나에게는 아주 소중한 가보 하나가 생기게 된 셈이다.

 나의 정년 퇴임 행사때 이를 소개해 드렸더니

재단에서 기념관을 만들때 좋은 전시물이 되겠다면서

기증해 주기를 원했지만 그때 주기로 하고

아직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무슨 막자갈을 이렇게

소중하게 지니고 있느냐고   의아해 할까봐 사연을 이야기 하고

그 어느 가보 보다도 더 소중한 보물이라고 일러 두었다.

 

이가을,  9 월이 시작하는 날,

팔순을 맞는 그 분을 만나고 와서

새삼 이 소중한 선물을 친구들에게 소개 하고 싶었다.

그렇다!  보석이 아니드라도  자기에게 아주 값진 사연이 묻어 있는게

그게 가장 소중한 가보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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