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그림).

조선시대 김명국의 미술세계.

아까돈보 2011. 3. 7. 18:07

 

 

    조선시대 김명국의 미술세계
    조선시대 김명국의 미술세계

    조선시대 김명국의 미술세계


    -선종화-
     
    조선시대 제2기(1550경~1700경) 에 해당되는 
    시기에 화단을 이끌던 이는 김시,이경윤과 더불어 
    또 한사람의 대가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김 명국(1600~?)
    이다. 김명국은 본관은 안산(安山)이며, 자는 천여(天汝), 
    호는 연담(蓮潭) 또는 취옹(醉翁)이다. 
    도화서의 화원으로서 교수(敎授)를 지냈으며, 
    1636년과 1643년 두 차례에 걸쳐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다녀왔다.  김 명국은 절파계 화풍을 구사했던 
    화가인데 더불어 안견파 화풍을 쓰기도 했다. 그가 주로 
    사용했던 절파화풍은 거칠고 과장된 기운이 감도는 광태
    사학파(狂態邪學派)에 가까운 화풍이었다. 일화에는 그가 
    일본에 머무는 동안 그림을 청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밤잠을 못 잘 정도였다고 한다.
    김 명국은 성격이 호방하고 술을 몹시 좋아하였고 
    술에 취해야만 그림을 그리는 특이한 버릇이 있어서 
    그의 작품들은 취중에 그린 것이라고 한다.이러한 그의 
    호방한 기질은 그림에서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굳세면
    서도 매우 호방하고 거친 필법으로 그려낸 그의 작품은 조선 
    전기의 안견파 화풍을 보이는 것도 있으나, 대부분이 절파 후
    기의 광태사학파적인 산수인물화이다.  산수화나 달마도와 
    같은 선종화가 주류를 이루는데, 대담하고 간략한 붓질로 
    표현하면서도 작품의 대상에 내면적 세계를 잘 
    표출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1).기려도(騎驢圖)
    는 그의 김 명국의 <산수인물화첩> 중의 한 폭으로, 
    그 기법에 있어서 선종화적인 풍취가 깃든 작품이다.  
    갓을 쓰고 나귀를 타고 가는 선비를 그린 소경산수인물
    도에서는 오랜 여행길에 몹시 지쳐 보이는 나귀와는 달리 
    시상에 잠겨 있는 선비의 모습을 김명국 특유의 재빠른 붓질로 
    잘표현되고 있다.  배경의 산수는 절벽에 덩굴풀이 흘러내리도
    록 매우 간략하게 그려져 있어서 그림의 초점이 중앙의 나귀 
    탄 인물에 있음을 알려준다.화 법:비단에 수묵
    크 기:29.3cm x 24.6cm
    소장처:서울 개인 소장

    2)설경산수도 김명국은 성격이 호방하고 술을 좋아하여 크게 취해야만 그림을 그리는 버릇이 있어서 대부분의 그의 작품은 취한 후에 그려진 것이다. 설경산수도에도 김명국의 이러한 특색이 잘 나타나 있는데, 다른 그림에 비해 화면이 약간 정리된 듯하지만 활달성은 한층 심화되어 있다.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겨울 새벽녘인 듯한 시각에 사립문에 기대어 전송하는 동자와 뒤를 돌아다보며 길을 떠나는 나귀 탄 고사(高士)와 종자(從者)의 송별 장면이 눈 덮인 설경을 배경으로 그려졌다. 중경에 그려진 넘어질 듯 솟아 오른 산의 무게를 대각선상에서 받치면서 화면의 변각구도를 보강해 주고 있는 다리와 그 위의 기려(騎驢)인물은, 패교를 건너 설산으로 매화를 찾아 떠났다는 당나라의 시인 맹호연을 연상케 한다. 언덕과 눈 덮인 산기슭과 앙상한 나뭇가지와 인물들의 옷 주름에 가해진 힘차고 날카롭게 각진 윤곽선이라든지 거친 묵법 등은 광태파 화풍과의 유관함을 보이면서 어둡고 차가운 설경 속 화중인물의 심의(心意)를 승화시키고 있다.. 17세기. 족자모시에 수묵 101.7*54.9cm. 국립박물관 소장

    3)탐매도(探梅圖) 탐매도에는 김명국의 광태적 화풍의 특색이 잘 나타나 있다. 즉 산등성이와 암괴(岩塊)는 굵고 힘찬 필치로 대담하게 묘사 되었으며, 지팡이를 비스듬히 잡고 서 있는 은사(隱士)와 그 옆의 시자(侍者)의 의습선들은 분방하면서도 날렵하여 김명국 특유의 체취를 느끼게 한다. 강한 필치가 연두색 등의 연한 담채에 어울려 더욱 강렬하게 느껴지며, 화면 전체에 서정적인 분위기가 넘치고 있다. 다만, 포치(布置)가 다소 옹색한 느낌을 주는 것이 아쉽다. 17세기 중엽 비단에 채색 45.7*31.6cm 국립중앙박물관

    4)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  1662년  (만춘)
    이금산수(泥金山水)는 사계절을 8폭에 담은 화첩 중 
    초춘. 만춘. 초하. 만하의 네 폭이다. 각 계절마다 두폭씩 
    8폭으로 꾸며졌다. 도판의 그림은 두 폭씩 한 쌍을 이루되 
    각기 좌우에 치중하여 중앙을 비우는 화면 구성을 이루고 있다. 
    화첩이 오른쪽에서부터 시작되므로 초춘은 
    오른쪽에 비중을 둔 그림이다.
    춘경에는 수면을 비교적 좁게 나타냈고 물결이 잔잔하며, 
    전경에 나타난 수종은 덩굴이 감긴 노송(老松)으로 되어 있다. 
    만춘에 이르면 버드나무가 전경에 크게 부각되어 사방이 트인 
    옥내에 있는 인물 역시 크게 나타나 있다.초하는 도롱이를 입고 
    귀가 중인 두 인물이 전경에 등장하여 우중(雨中)임을 알려주고 
    물살이 다소 높아져 있다. 만하는 야경으로서 보름달이 중천에 
    떠 있으나, 전경의 나무들은 바람에 크게 흔들리며 사뭇 동적
    으로 나타나 있다. 이 화첩은 또 다른 6폭의 산수 인물첩과 
    필치 및 구도면에서 유사점이 많아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그림으로 보인다.
     김명국은 산수에 있어 소방(疎放)한 절파계 화풍만이 
    아니라 전기화단의 안견화풍도 오히려 노년기에 접어들어 
    그리고 있어 <사시팔경도> 화첩은 그의 또 
    다른 면모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화첩 비단에 이금 각각27.1*25.7cm  국립박물관
    5)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  1662년  (초하)
    이금산수(泥金山水)는 사계절을 8폭에 담은 화첩 중 
    초춘. 만춘. 초하. 만하의 네 폭이다. 각 계절마다 두폭씩 
    8폭으로 꾸며졌다. 도판의 그림은 두 폭씩 한 쌍을 이루되 
    각기 좌우에 치중하여 중앙을 비우는 화면 구성을 이루고 
    있다. 화첩이 오른쪽에서부터 시작되므로 
    초춘은 오른쪽에 비중을 둔 그림이다.
    춘경에는 수면을 비교적 좁게 나타냈고 물결이 잔잔하며,
     전경에 나타난 수종은 덩굴이 감긴 노송(老松)으로 되어 
    있다. 만춘에 이르면 버드나무가 전경에 크게 부각되어 
    사방이 트인 옥내에 있는 인물 역시 크게 나타나 있다.
    초하는 도롱이를 입고 귀가 중인 두 인물이 전경에 
    등장하여 우중(雨中)임을 알려주고
     물살이 다소 높아져 있다.
    만하는 야경으로서 보름달이 중천에 떠 있으나, 
    전경의 나무들은 바람에 크게 흔들리며 사뭇 동적으로 
    나타나 있다. 이 화첩은 또 다른 6폭의 산수 인물첩과 필치 
    및 구도면에서 유사점이 많아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그림으로 보인다.
     김명국은 산수에 있어 소방(疎放)한 절파계 화풍만이 
    아니라 전기화단의 안견화풍도 오히려 노년기에 접어들어 
    그리고 있어 <사시팔경도> 화첩은 그의 또 다른 면모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화첩 비단에 이금 각각27.1*25.7cm  국립박물관

    6)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  1662년 (만하)
     이금산수(泥金山水)는 사계절을 8폭에 담은 화첩 중 초춘. 
    만춘. 초하. 만하의 네 폭이다. 각 계절마다 두폭씩 8폭으로 
    꾸며졌다. 도판의 그림은 두 폭씩 한 쌍을 이루되 각기 좌우에 
    치중하여 중앙을 비우는 화면 구성을 이루고 있다. 화첩이 오른
    쪽에서부터 시작되므로 초춘은 오른쪽에 비중을 둔 그림이다. 
    춘경에는 수면을 비교적 좁게 나타냈고 물결이 잔잔하며, 
    전경에 나타난 수종은 덩굴이 감긴 노송(老松)으로 되어 
    있다. 만춘에 이르면 버드나무가 전경에 크게 부각되어 
    사방이 트인 옥내에 있는 인물 역시 크게 나타나 있다.
     초하는 도롱이를 입고 귀가 중인 두 인물이 전경에 등장하여 
    우중(雨中)임을 알려주고 물살이 다소 높아져 있다. 만하는 
    야경으로서 보름달이 중천에 떠 있으나, 전경의 나무들은 
    바람에 크게 흔들리며 사뭇 동적으로 나타나 있다. 이 
    화첩은 또 다른 6폭의 산수 인물첩과 필치 및 구도면에서 
    유사점이 많아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그림으로 보인다.
     김명국은 산수에 있어 소방(疎放)한 절파계 화풍만이 
    아니라 전기화단의 안견화풍도 오히려 노년기에 접어들어 
    그리고 있어 <사시팔경도> 화첩은 그의 또 다른 
    면모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화첩 비단에 이금 각각27.1*25.7cm  국립박물관

    
    7)달마절로도강(達磨折蘆渡江)
    달마의 초상이나 행적은 선종화에서 즐겨 다루었던 
    소재였는데, 이 그림도 그의 행적 중의 하나를 묘사한 
    것이다. 6세기 초 중국에 건너간 달마가 양(梁) 나라 
    무제에게 최초로 설법하였지만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갈대잎을 꺾어 타고 양자강을 건너 위(魏)나라로 
    갔다는 전설을 담고 있다. 한 줄기 갈대에 몸을 
    싣고 서 있는 달마의 얼굴은 광대뼈와 
    매부리코, 치켜 올라간 눈매로 매우 
    강하면서도 이국적인 인상을 풍긴다.
     담묵으로 비교적 섬세하게 묘사된 얼굴에 비해, 
    의복부분은 죽죽 그어댄 활달한 농묵의 필선으로 
    간략하게 표현되었다. 주춤거리는 곳이 없는 빠른 
    속도의 감필묘(減筆描)는 김명국의 세련된 기교를 
    말해준다. 이같이 대담한 필선은 예리한 눈매와 
    더불어 달마의 농축된 선기(禪氣)를 성공적
    으로 표출시키고 있다. 전체적으로 왼쪽으로 
    진전하는 듯한 인상이면서도 옷자락의 끝단이
     왼쪽으로 날리게 처리한 것은 필선 자체의 
    추상적 리듬에 치우쳐 사실적인 묘사에 
    위배된 부분이다.
     17세기
     족자 종이에 수묵  97.6*48.2cm  국립중앙박물관

    8)달마도(達磨圖) 김명국은 절파풍의 화가로 유명하지만, 선종화(禪宗畵)에서도 훌륭한 작품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이 달마도는 조선시대의 선종화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원래 이 그림은 일본에서 유전하던 것인데, 8.15해방 후에 구입해 왔다. 따라서 작품의 제작 시기는 그가 통신사의 수행화원으로 도일했던 1636~1637년과 1643년의 어느 해일 것으로 추정된다. 남인도인으로서 6세기 경 중국에 건너가 선종의 시조가 되었다는 보리달마의 모습은 선종화의 중요 화제로서 즐겨 다루어지던 것이다. 여기서는 두포 (頭布)를 달마의 상반신만을 묘사했는데, 9년 동안의 면벽좌선으로 고양된 그의 내면 세계가 대담하고 힘찬 몇 번의 붓질로 잘 포착되어 있다. 옷주름에 나타난 극도로 생략된 감필 붓자국의 굵고 가는 선폭의 결과 모양은 화면에 강렬한 인상을 부여해 주며, 재빠른 필선의 속도에서는 작가의 활기찬 움직임이 느껴진다. 1636~1637 또는 1643년 족자 종이에 수묵 83*58.2cm 국립중앙박물관

    ◇ 김명국의 '죽음의 자화상'◇
      
    화가에게 있어서 술은 간혹 창작의 촉매제였다. 
    취옹(醉翁)이라는 호를 즐겨 사용한 17세기 인조 
    연간의 연담(蓮潭) 김명국(金命國)은 정말로 취필
    (醉筆)을 많이 남겼다. 사람들은 그를 주광(酒狂)이
    라고 불렀고 실제로 그는 술을 마시지 않고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
    ●-立春大吉 建陽多慶-신묘년에는 運數大通하시길 기원합니다-又우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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