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수없이 들락거리지만
한가한 마음으로 고궁을 거닐며
그것도 오랫만에 만난 친구와 정담을 나누며
어제의 일과 오늘의 삶을 이야기 한다는건
쉽고 흔한 일이 아닐것이다.
나는 이번 나들이 길이 이런 모습이었으면 했다.
그래서 친구 몇과 작정을 하고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을
그리고 종묘와 인사동, 광화문일대를 거닐기로 하고
인터넷 예약 시스템을 통해 각각 예약해 두었다.
더 확실하게 하느라고 김 정태 친구 에게 자문을 구했더니
그가 누구인가? 자기가 직접 안내 하겠다면서
열두 페이지의 탐방자료와 안내협조 공문까지 보내 주면서
그리 좋은 건강도 아니면서 이틀을 함께 걷고 이야기 하면서
답사같은 답사를 하게 해 주었다.
나중에서야 안 이야기이지만
몸살기가 있어 몸상태도 안 좋았고
무릅관절 수술과 그 밖의 큰 수술로 그리 많은 길과
경사가 급한 곳을 다니면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창경궁 후원을 세시간에 걸쳐 오르내리느라
그날밤은 앓아 두었었던 모양이다.
참 미안하고 송구한 마음인데
이게 진정한 친구의 우정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번 나들이 이야기를 종묘에서 부터 시작하려한다.
종묘야 말로 의미로나 세계문화유산으로의 가치로나
우리나라 건축을 하나만 꼽는다면
나는 이 종묘를 첫번째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우리가 거니기에는, 아니지 종묘 참배엔 안성마춤이 되었다.
신령만 드나든다는 정문을 통해 들어갔으니
우리는 모두가 신선이 되었고 임금들만 출입했다는 동문에는
일본 관광객들이 탄성을 내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며 드나든다.
서문쪽에는 악공도 없고 소리도 들리지 않아
대신 종묘제례악 사진으로 소리를 보게된다.
아~ 그래서 소리를 보게된데서 관음이라 했던가?
여러차례 덧대어 증축했음에도 지붕선이 이리 아름다울수 없고
월대의 제멋대로 이은듯한 바닥돌이 절경중에 절경이다.
나는 언제나 이 바닥에 깔린 월대의 돌을 떠올리면
우리 민족의 유전인자 속엔
이런 빼어난 미적 감각을 이어받고 태어난다는 생각이 든다.
불국사 축대의 제멋대로 짜맞춘 돌의 아름다움이나
부석사의 아홉단 축대도 그렇거니와
밥상에 얹혀진 쪼각보 조차도 그러니까 말이다.
요즈음 시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종묘 앞 노인천국의 바둑두는 무리조차
이같이 월대 바닥돌을 닮아 있어서
함께 한 친구들도 그리 느꼈는진 모르겠으나
나는 우리 찢겨진 자화상 조차도
종묘의 월대 바닥돌을 닮아 있구나 싶어
웃기는 아이러니를 느낀다.
우리는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심에선 멀어졌으나
외국인 방문객이나 탐방인사들에겐
경탄과 탄식을 빼앗아 밷게하는
조선 건축술의 백미
종묘를 이리도 자유롭게
거닐고 있다.
조선의 500년 정신이 머물고 있는
혼이 서려있는 거룩한 곳을
버릇없이, 예도 갖추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