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술
현대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술은 무엇일까요? 소주 아닐까요? 매일 전국에서 엄청난 양의 소주가 판매되고 있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소주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도 싫을 정도로 소주는 인기가 좋습니다. 그런데 원래 소주는 이런 게 아니었습니다. 굳이 분류해서 보자면 우리가 시중에서 많이 먹는 소주는 주정(酒精), 즉 에탄올(먹는 알코올)에 물을 타 희석해서 만든 희석식 소주입니다. 반면에 진짜 소주는 막걸리의 원료인 ‘술밑’을 증류해서 만드는 안동 소주와 같은 것입니다. | |
우리의 소주의 유래
요즘은 소주가 마치 국민주처럼 되어 있지만 우리 민족이 원래부터 소주를 먹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 조상들은 원래 청주(혹은 약주)와 막걸리(혹은 탁주)를 주로 마셨습니다. 귀족은 청주를 마시고 일반 백성들은 막걸리를 마셨지요. 우리 조상들은 소주 같이 센 술 만드는 법을 잘 몰랐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소주를 알게 된 것은 전적으로 몽골의 영향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는 것처럼, 고려 말에 우리는 몽골의 지배를 받는데 이때 이들이 먹던 소주가 고려에 소개된 것이지요. 이 계통의 소주로 지금 세간에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안동소주입니다.
그런데 왜 안동에서 소주를 만들었을까요? 이것은 몽골이 일본을 치기 위해 만든 병참기지가 안동과 개성에 있었던 때문으로 이해됩니다. 몽골군이 이곳에 주둔해서 소주를 만들던 것이 그대로 정착되어 안동이 소주로 유명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개성에서는 근자에도 소주를 ‘아락주’라고 했다는데, ‘아락’은 아랍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소주는 아마도 아랍지방에서 만들어져 만주를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추측됩니다. | |
소주는 앞에서 말한 대로 주로 쌀을 발효시켜 그것을 증류해서 만드는 반면, 지금 우리가 식당에서 먹는 소주는 이렇게 만들지 않습니다. 지금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희석식 소주는, 우선 고구마나 사탕수수 같은 원료로 당밀을 만듭니다. 이 당밀은 95%의 알코올 농도를 갖고 있다고 하는데, 이것을 연속식 증류기를 이용해 에탄올(에틸 알코올)을 만들어냅니다. 그런 다음 여기에 물과 그밖의 첨가물을 타면 우리가 먹는 소주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주가 처음 나왔을 때 알코올 농도가 몇 도였는지 아십니까? 지금 소주는 20도 이하까지 알코올 농도가 떨어졌지요? 처음 나온 소주는 30도였답니다. 그게 뒤에 25도로 되어 꽤 오랫동안 유지되다가 최근에 계속 떨어져서 20도 밑으로까지 내려간 것입니다.
이렇듯 소주는 도수가 높았기 때문에 처음 나왔을 때에는 인기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1960년대 중반에 쌀이 부족한 탓에 순곡주 금지령이 내려지면서 국민들이 어쩔 수 없이 소주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막걸리의 질이 너무 떨어져 소주를 먹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1960~70년대에 술을 마셨던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카바이드’ 막걸리라는 게 있었습니다. 이때에는 막걸리를 쌀로 만들 수 없으니 밀가루 등으로 만들었는데, 발효를 빨리 시키려고 카바이드라는 하얀 돌 같은 것을 넣은 경우도 있었답니다. 이 물질을 물에 넣으면 가스가 나오는데 여기에 불을 붙여 램프 대용으로도 많이 썼지요. 이런 화학물질을 넣어 막걸리를 만들었으니 이 술을 마시면 뒤탈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이유 등으로 국민들은 막걸리를 외면했고 대신 소주를 찾게 됩니다. 이 관습이 굳어져 소주가 더 인기가 있는 술이 된 것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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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안동소주. | |
우리나라 술의 역사
소주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이제부터 우리나라 술의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 보기로 하겠습니다. 남아 있는 기록이 많지 않지만, 삼국시대에 ‘미인주’라는 게 있었답니다. 이 술은 미인인 여성이 곡물을 씹어 뱉은 것을 발효시킨 것입니다. 왜 씹은 곡물로 술을 만들었을까요? 이것은 곡물의 전분이 침 속에 있는 ‘프티알린’이라는 효소에 의해 당화되기 때문입니다. 곡물 양조주는 이와 같이 전분을 당화(糖化)해서 발효시켜야 술이 되는데, 전분을 당화하기 위해 넣는 것이 바로 누룩입니다. 한자로는 ‘국(麴)’이라고 하는 누룩은 밀 같은 곡물을 반죽해놓으면 곰팡이의 포자가 붙어 발효되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도 누룩 만드는 방법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일본 쪽의 기록을 보면 백제의 ‘수수보리’라는 이가 일본으로 누룩을 가져와 술 빚는 방법을 알려주었다고 하니 말입니다. ‘응신’이라는 이름의 천황은 수수보리가 만들어준 술을 먹고 취해서 노래를 불렀다는 기록도 있는데, 이후 수수보리는 일본의 주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고려 때의 [고려도경] 같은 기록을 보면 ‘왕이나 귀족들은 멥쌀로 만든 청주를 마시는 반면 백성들은 이렇게 좋은 술은 못 마시고 맛이 짙고 빛깔이 짙은 술을 마신다’와 같은 기록이 있는데, 이때 백성들이 먹은 술은 막걸리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청주는 막걸리에서 나오는 술입니다. 막걸리가 다 되면 통에 ‘용수’, 즉 싸리 등으로 만든 긴 통을 박아 맑은 술을 떠내면 그게 청주가 됩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재료를 넣으면 법주 같은 여러 종류의 청주가 나오는 것입니다. | |
소주를 고아내는 데 사용하는 도구인 ‘소주고리’. <출처 : wikipedia(karendotcom127)>
쉽게 꺼지지 않는 전통
그런데 이 청주를 약주라고도 부르지요? 여기에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가장 유력한 설은 금주령과 관계될 듯합니다. 조선조에는 금주령이 여러 차례 내려졌는데 약재를 넣은 약주는 예외였습니다. 그래서 양반들은 청주를 약주인 양 사칭하면서 많이 먹었다고 합니다. 그 뒤로 술을 약주로 부르게 되고 그것이 오늘날 술을 통칭하는 이름이 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이 위에서 본 세 가지의 술만 먹었던 것은 아닙니다. 19세기 초에 쓰인 [임원경제십육지]같은 책을 보면 170여 가지의 술 이름이 나옵니다. 술의 종류가 아주 다양했던 것이지요. | |
최근 국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막걸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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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큰 가문에서는 제사지낼 때 쓰기 위해 나름대로 술을 빚었습니다. 그러니까 수많은 종류의 술이 있었겠지요. 그러던 것이 일제기에 대규모 양조업체가 생기고 밀주 단속이나 세금을 물리는 등 우리 전통술에 대해 단속을 강화하자 그 많던 전통주들은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은 해방 뒤에도 그리 달라지지 않습니다. 1960년대 중반에 ‘순곡주 제조 금지령’이 발동되고 여전히 밀주를 단속해 전통주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그렇게 진행되다 1980년대에 들어와 지나친 간섭을 의식한 정부가 한 도에 민속주 하나씩 개발하게끔 숨통을 틔어줍니다. 이것은 1986년의 아시안게임과 1988년의 올림픽을 의식한 것이었지요. 그래서 나온 게 앞에서 언급한 안동 소주 같은 지역의 명주였습니다. 그 뒤로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수많은 전통주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꽤 인기를 끌었던 술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주가 20도 이하로 도수를 낮추자 다시 전통주들이 고전하게 됩니다. 그렇게 우리 술이 꺼져가는 것 같더니 이제는 막걸리 열풍이 붑니다. 지금 우리가 즐기는 막걸리는 전통의 주조법을 따르되 많은 연구를 거쳐 나온 명품입니다. 근자의 막걸리 열풍을 보면서 전통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꺼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안도가 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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