始祖(시조)李秀匡(이수광)의 아들 李臣靖(이신정)은 吏部尙書(이부상서)에 오르고 孫子(손자)李元儀(이원의)는 丞旨(승지),曾孫(증손) 李英柱(이영주)는 上將軍(상장군)을 歷任(역임)하였다.李英柱(이영주)는 또 忠烈王(충열왕)의 딸을 아내로 맞아 王室(왕실)과 姻戚關係(인척관계)를 맺으며 더욱 튼튼하게 家門(가문)의 基盤(기반)을 다졌다.그의 아들 李天(이천) 또한 陽城君(양성군)에 封(봉)해졌으며,李天(이천)의 큰아들 李守邦(이수방)은 元(원)나라에 使臣(사신)으로 갔을 때 人品(인품)과 才能(재능)이 英宗(영종)의 눈에띄어 直省舍人(직성사인)의 벼슬과 那海(나해)라는 이름을 받았다고한다. 그의 네아들도 모두 벼슬을 해사람들은 "那那海(나나해)같이 되었으면" 하는 뜻에서"似那海(사나해)"라고 한것이"사나이"란 말의 紀元(기원)이 됐다고 後孫(후손)들은 말한다.
朝鮮時代(조선시대)人物(인물)로는 世宗(세종)때 有名(유명)한 天文學者(천문학자)이자 發明家(발명가)인 李純之(이순지)가 있다. 그는 判中樞院使(판중추
원사)에까지 올랐고 世宗(세종)의 命(명)을 받아 金淡(김담),蔣英實(장영실)等(등)과 함께 曆法(역법)을 硏究(연구)했고, 天文學(천문학) 書籍(서적)을 編纂(편찬)하기도 했다. 그는 算學(산학), 天文(천문), 風水(풍수) 等(등) 自然科學(자영과학)의 大家(대가)였는데 金淡(김담)과 함께 쓴"七政算內外篇(칠정산내외편)" 이 그中(중)에도 有名(유명)하다.또 成宗(성종)때 學者(학자)로 이름을 날린 李承召(이승소)를 들 수 있다. 그는 多方面(다방면)에 造詣(조예)가 깊어 藝文館提學(예문관제학)을 지낼때 明皇誡鑑(명황계감)을 우리말로 飜譯(번역)했고 文集(문집)"三灘集(삼탄집)"을 남겼다.그는 當時(당시)文章(문장)으로 일컫던 徐居正(서거정)과 어깨를 나란히한 文人(문인)이었는데 特(특)히 容貌(용모)와 態度(태도)가 端雅淸淨(단아청정)해 金玉君子(금옥군자)라고도 불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