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吉祥(이길상)은 高麗(고려)때 軍器寺尹(군기사윤)을 지냈다. 李乙珍(이을진)은 高麗(고려) 禑王(우왕)5年에 忠州(충주) 丹陽都兵馬使(단양 도병마사)에 任命(임명)되고, 그後(후) 全羅道都巡問使(전라도도순문사),江陵道都元帥(강릉도도원수), 江陵交州道(강릉교주도)都檢察使(도검찰사)等(등)을 歷任(역임)했다.그는 1388年遼東征伐(요동정벌)때 八道都統使(팔도도통사)助戰元帥(조전원수)로 出戰(출전),威化島(위화도)에서 回軍(회군)하였다.
1389年 逐出(축출)된 禑王(우왕)의 使嗾(사주)로 李成桂(이성계)를 죽이려 하였다는 金佇(김저)의 獄事(옥사)에 連累(연루)되어 한때 流配(유배)되었다가 1392年朝鮮開國後(조선개국후) 다시 流配(유배)되었다. 李從茂(이종무)는 1381年 高麗(고려)禑王(우왕)때 江原道(강원도)에侵入(침입
)한 倭寇(왜구)를 擊破(격파)한 功(공)으로 精勇護軍(정용호군)이 되고,1397年
朝鮮(조선)太祖(태조)6年 倭寇(왜구)가 侵入(침입)하자 끝까지 싸워 이를 擊退(격퇴)하여 僉節制使(첨절제사)에 올랐다.1400年 定宗(정종)2年에는 第2次(제2차)王子(왕자)의 亂(란)에 李芳幹(이방간)의 軍士(군사)를 무찔러 通原君(통원군)에 封(봉)해지고,그後(후) 左軍總制等(좌군총제등)을 歷任(역임)하고 長川君(장천군)에 改封(개봉)되었다.그後(후) 安州都兵馬使(안주도병마사),安州節制使(안주절제사),左參贊(좌참찬)等(등)여러 官職(관직)을 거쳐 崇祿大夫(숭록대부)에 올랐으며 1419年對馬島(대마도)를 征伐(정벌)하고 돌아와 贊成事(찬성사)에 昇進(승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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