始祖(시조) : 金德齡(김덕령)
始祖(시조) 金德齡(김덕령,1567-1596,宣祖0-宣祖29)의 字(자)는 景樹(경수)이며 壬辰倭亂(임진왜란)때 創意(창의)하여 義兵將(의병장)으로서 功(공)을 세우고 翼虎將軍(익호장군)에 오르고 諡號(시호)는 忠壯(충장)이다.原來(원래)의
本貫(본관)은 光山金氏(광산김씨)이다. 龍安金氏(용안김씨)는 光山金氏(광산김씨)의 支派(지파)로, '龍安金氏族譜(용안김씨족보): 1978年度(년도)刊行(간행),戌午譜)에 依(의)하면 始祖(시조) 金德齡(김덕령)은 光山金氏(광산김씨)分貫祖(분관조) 金興光(김흥광)의 31世孫(세손)으로 光州市(광주시)忠孝洞(충효동) 성안마을에서 1567年 光山金氏(광산김씨) 習讀公(습독공) 鵬燮(붕섭)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壬辰倭亂(임진왜란)때 創意(창의)하여 여러 곳에서 큰 功(공)을 세워 翼虎將軍(익호장군)에 올랐고, 忠勇軍(충용군)이란 軍號(군호)까지 받았으나"奸臣(간신)의 誣告(무고)로 獄死(옥사)"하였고 그의 夫人(부인) 貞敬夫人(정경부인)李氏(이씨)도 百尺(백척) 벼랑에서 投身(투신)하여 自決(자결)하자 홀로 남은 아들 金光沃(김광옥)은 全北(전북) 益山市(익산시) 龍安面(용안면)에 避身(피신), 本貫(본관)을 龍安(용안)으로 하여 身分(신분)을 감추고 살다가 外叔(외숙) 萬松堂(만송당) 李寅卿(이인경)의 臨地(임지)인 平安道(평안도)肅川郡(숙천군) 近處(근처)安
州郡(안주군) 雲谷面(운곡면) 쇠꼴이란 곳에 定着(정착)하게 되었는데 이곳이 그의 第2의 故鄕(고향)이고 後孫(후손)들의 永遠(영원)한 故鄕(고향)이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또 戊午譜(무오보) 拔文(발문)에 金德齡(김덕령)이 始祖(시조)가 된다는 事實(사실)이 確證(확증)된것은 新羅金氏(신라김씨)大宗史(대종사)와 陽州金氏(양주김씨)의 族譜(족보)에 依(의)해 밝혀졌다고 하였으니 그以前(이전)에는 金德齡(김덕령)의 後孫(후손)임을 알지못했던 것으로 斟酌(짐작)된다.龍安金氏(용안김시)는 그 以後(이후) 解放當時(해방당시)까지 平南(평남
)安州郡(안주군)雲谷面(운곡면) 一帶(일대)에 15代(15대)까지 繁昌(번창)하며 平和(평화)롭게 살고 있었으나 南北分斷(남북분단)으로 因(인)해 少數(소수)의
後孫(후손)들이 越南(월남)하여 各地(각지)에 흩어져 살고있는 實情(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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