姓氏의 故鄕

龍崗彭氏(용강팽씨) (1020).

아까돈보 2011. 7. 22. 14:26

 

 

龍崗彭氏(용강팽씨)

 

▣ 由 來

 

 

始 祖(시조) : 彭 逖(팽적)


始祖(시조)彭逖(팽적)은 中國(중국)金陵(금릉)사람으로 1351年(高麗 忠定王3年) 元(원)나라 魯國公主(노국공주)가 恭愍王(공민왕)과 結婚(결혼)하여 入國(입국)할때 內閣學士(내각학사)로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龍岡伯(용강백)에 封(봉)해졌다.그래서 後孫(후손)들이 本貫(본관)을 龍岡(용강)으로 하였다.
 

▣ 人 物

 

 

彭逖(팽적)의 孫子(손자)彭祖(팽조)가 朝鮮(조선)에서 判中樞府事(판중추부사

)를 歷任(역임)했고, 그의 아들 彭陽(팽양)大司憲(대사헌)에 올라 크게 名聲(명성)을 날림으로써 家門(가문)을 中興(중흥)시켰다.한편 同知中樞府事(동지

중추부사)를 지낸彭誠(팽성)은 彭陽(팿양)의 孫子(손자)이며,彭誠(팽성)의 아들彭汀顯(팽정현)은 禦(어모장군)에, 彭誠(팽성)의 孫子(손자)彭湖)(팽호) 建功將軍(건공장군)에 올랐다. 其外(그외)同知中樞府事(동지중추부사)를 지낸 彭鳳瑞(팽봉서)와 上護軍(상호군)을 歷任(역임) 彭淳(팽순)彭敬大(팽경대)가 有명(유명)했으며, 軍資監正(군자감정)을 지낸 彭潤大(팽윤대)는,工曺參義(공조참의)를 歷任(역임)彭只根(팽지근),戶曺參判(호조참판)을 지낸彭鳳爀(팽봉혁)等(등)과 함께 家門(가문)을 빛냈다.
 

▣ 世居地

 

 

- 北韓(북한)地域(지역)에 主(주)로 分布(분포)되어 있고,一部(일부)는 京畿道(경기도)楊州市(양주시)과 忠北(충북)丹陽郡(단양군)等地(등지)에 살고 있다.
 

▣ 行列字(항렬자)

 

6世
윤(潤)
7世
근(根)
8世
혁(爀)
9世
주(周)
10世
진(軫)
11世
원(源)
12世
주(柱)
13世
희(熙)
14世
-
15世
-

 

※ 世와 代는 다른 것으로 世에서 1을 뺀 값이 代가 된다. (예: 7世孫은 6代孫)
 

▣ 本貫  沿革

 

 

本貫所在地: 平安南道  龍崗郡


龍崗(용강)은 平安南道(평안남도)西南端(서남단)에 位置(위치)하는 地名(지명)으로, 本來(본래)는 (黃龍國(황룡국)이었으며 後(후)에 高句麗(고구려)에 倂合(병합)되었다.高麗(고려)時代(시대)에는 黃龍城(황룡성)또는 軍岳(군악

)이라 하고 營(영)을 두었으며,  後(후)에 龍崗(용강)이라고 고쳐 縣領(영현)으로 하였다.朝鮮時代(조선시대)에 여 次例(차례)의 變遷(변천)을거쳐 1895年甲午更張(갑오경장)때에 郡(군)으로 되고,1914年에 郡面(군면)廢合(폐합)咸從郡(함종군)의 一部(일부)를 統合(통합), 現在(현재)에 이르고 있다.
 

▣ 人口數

 

 

統計廳(통계청)의 人口調査(인구조사)에 依(의)하면 龍崗彭氏(용강팽씨)는
1985年에는 총 263家口 1,048名,
2000年에는 총 259家口 795名이 있는 것으로 調査(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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