姓氏의 故鄕

靑松金氏(청송김씨) (1076).

아까돈보 2011. 8. 27. 23:12

 

 

靑松金氏(청송김씨)

 

▣ 由

 

 

始 祖(시 조)  : 金正己(김정기)


 

始祖(시조)金正己(김정기)는 新羅(신라)敬順王(경순왕)의 16世孫(16세손)으로 朝鮮(조선)太祖(태조)때 漢城判尹(한성판윤)을 歷任(역임)하고 直諫(직간)을 하다 太祖(태조)의 脾胃(비위)에 거슬려 仲山[중산:只今(지금)의 定平(정평)]으로 由配(유배)되었다. 그後(후) 靑松(청송)에서 仲山府(중산부) 細柳面(세류면)細陽里(세양리)로 옮겨 살다가 一生(일생)을 마치니, 後孫(후손)들이 金正己(김정기)를 1世祖(1세조)로 하고 本貫(본관)을 靑松(청송)으로 삼아 世

系(세계)를 繼承(계승)하였다.

▣ 人物

 

 

金正己(김정기)의 아들 金玉衡(김옥형)이 通訓大夫(통훈대부)로 司憲府監察(

사헌부감찰)을 歷任(역임)했고,孫子(손자)金寶重(김보중)은 通德郞(통덕랑)에 올라 家門(가문)을 中興(중흥)시켰으며,金輔重(김보중)의 맏아들 金致誠(김치성)은 通政大夫(통정대부)로 僉知中樞府事(첨지중추부사)를 지내고 長谷面(장곡면)으로 移住(이주)하였고,次男(차남)金以誠(김이성)은 工曹參議(공조참의)를 歷任(역임)하였다.한편 金致誠(김치성)의 아들 4兄弟中(4형제중) 맏아들 金繼仁(김계인)은 五衛(오위)의 副司直(부사직)을 지냈으며,次男(차남)金繼義(김계의)와 막내 金繼智(김계지)는 通德郞(통덕랑)에 올랐다.그外(외)丙子胡亂(병자호란)때 義兵(의병)을 일으켜 敵(적)과 싸우다가 壯烈(장열)하게 殉節(순절)한 金勝玭(김승빈)이 有名(유명)했고,金命宗(김명종)은 副護軍(부호군)을 歷任(역임)하여 司僕寺正(사복시정)을 지낸 金大春(김대춘)과 함께 家門(가문)을 빛냈다.
 

▣ 科擧及第者(朝鮮時代)

 

 

金宗鐸(김종탁) (1728 戊申生) : 文科 正祖1年(1776) 庭試 丙科
金重萬(김중만) (1732 壬子生) : 司馬試 英祖47年(1771) 式年試 三等
金宗(김종익) (1740 庚申生) : 司馬試 正祖13年(1789) 式年試 三等
모두 4名의 科擧 及第者가 있다.
(文科 1名, 司馬試 3名)


 

▣ 本貫 沿革

 

 

本貫所在地 : 黃海道 松禾郡


靑松(청송)은 黃海道(황해도)松禾郡(송하군)의 옛 地名(지명)으로 本來(본래) 高句麗(고구려)의 麻耕伊(마경이)를 高麗初(고려초)에 靑松縣(청송현)이라 고쳤다가 서기 1018年(高麗顯宗9)豊州郡[풍주군:豊川(풍천)]에 隸屬(예속)시켰으며 睿宗(예종)때 監務(감무)를 두었고, 朝鮮朝(조선조)에 와서 太宗(태종)이 靑松(청송)과 이웃 嘉禾(가화)를 合(합)하여 松禾郡(송화군)으로 改名(개명)하였다.
 

▣ 人口數

 

 

統計廳(통계청)의 人口調査(인구조사)에 依(의)하면 靑松金氏(청송김씨)는
1985年에는 摠 253家口 1,117名,
2000年에는 摠 504家口 1,641名이 있는 것으로 調査(조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