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時代(조선시대)에 107名(명)의 文科及第者(문과급제자)와 武科及第者(무과급제자)423名(명),政丞(정승)7名(7명),大提學(대제학)6名(6명),功臣(공신)20名(20명),淸白吏(청백리)6名(6명)을 낸 德水李氏(덕수이시)는 中宗(중종)에서 英祖(영조)때 까지의 3百年間(3백년간)이 가장 隆盛(융성)을 누린 時期(시기)로 나타나고 있다.
始祖(시조)李敦守(이돈수)의 아들 李陽俊(이양준)은 朝散大夫(조산대부)로 興威衛保勝將軍(흥위위보승장군)을 歷任(역임)하고 李陽俊(이양준)은 朝散大夫(조산대부)로 興威衛保勝將軍(흥위위보승장군)을 歷任(역임)하고 銀靑光祿大夫(은청광록대부)로 同知樞密院事(동지추밀원사),御史大夫(어사대부),吏部尙書(이부상서)等(등)에 追贈(추증)되었다.그 後(후)李陽俊(이양준)의 아들 李韶(이소)가 高麗高宗(고려고종)때 南省試(남성시)에 及第(급제)하여 通議大夫(통의대부)로 典法判書(전법판서)와 知三司事(지삼사사),世子內直郞(세자내직랑)等(등)을 歷任(역임)하였다. 李韶(이소)의 아들 兄弟(형제)中(중)長子(장자)인 李潤溫(이윤온)이 版圖判書(판도판서)와 上護軍(상호군)을 歷任(역임)하며 나라에 功(공)을 세워 宣忠勁節功臣(선충경절공신)에 冊祿(책록)되고 壁上三韓三重大匡(벽상삼한삼중대광)으로 僉議政丞(첨의정승),監春秋館事(감춘추관사)에 追贈(추증)되어,德水府院君(덕수부원군)에 追封(추봉)되었다.中宗(중종)때 大提學(대제학)과 左議政(좌의정)을 지낸 李行(이행), 明宗(명종)때 領議政(영의정)에 오른 李驥(이기),仁祖(인조)때 大提學(대제학)에 오르고 이름난 學者(학자)로서 門下(문하)에 많은 學者(학자)를 輩出(배출)한 李植(이식)等(등)이 人物(인물)이다. 이밖에 李安訥(이안눌)은 1599年 文科及第(문과급제)하고 여러言官職(언관직)을 거쳐 禮曺(예조)와 刑曺判書(영조판서)를 歷任(역임)하였고 詩(시)에 뛰어나 흔히 李太白(이태백)에 比喩(비유)되었으며 글씨에도 能(능)했다.그밖에 文(문)에서는 栗谷(율곡)李珥(이이),武(무)에서는 忠武公(충무공)李舜臣(이순신)等(등)의 有名(유명)人物(인물)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