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시조 동이족의 독창적인 발효음식
지금과 같은 ‘생선으로 만든 젓갈’의 의미를 뜻하는 지자가 기록된 가장 오래된 중국의 문헌은 2,500여 년 전인, BC 3~5세기경에 발간된 이아(爾雅)라는 자서(字書)이다.
문헌에는 “생선으로 만든 젓갈을 ‘지’, 육류로 만든 젓갈을 ‘해’ 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유학의 기본 예법서인 『주례(周禮)』에도 젓갈을 뜻하는 해(骸), 지, 자 등의 문자가 발견되며,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종합 농업기술서인 『제민요술(濟民要術)』에 젓갈의 제조방법은 물론 젓갈의 종류, 계절에 따른 숙성기간까지 가장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에 젓갈이 중국에서 유래한 듯 여기지만,
실상은 우리 선조들이 고대중국인들의 시대보다 훨씬 이전부터 만들어 먹어왔던, 창의적인 우리 민족 고유의 음식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실적 근거로, 『사서대전四書大全』에 BC 6000년부터 황하 하류 및 산둥반도, 요동반도 등 발해만 일대와 동부 해안지대에서 중국의 문화와 다른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던, 동이족(東夷族)이 우리 한(韓)민족의 시조(始祖)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의 젓갈이 고대중국의 고유하고 독창적인 음식문화가 아니라, 동이족으로부터 고조선, 삼국시대, 고려와 조선시대를 걸쳐 현재까지 맥을 잇고 있는 우리 민족 고유의 음식이자 식문화인 것이다. ★왕비의 폐백 품목이였던 문헌상 최초의 젓갈 삼국시대는 동이족으로부터 기원한 젓갈이 발효 기술의 발달로, 채소나 어패류를 이용한 다양한 식감(食疳)의 젓갈류와 된장, 간장, 채소 장아찌류, 술 등의 ‘발효음식’과 ‘절임음식’이 개발되던 시기이다.
삼국 중 고구려는 누룩과 맥아를 발효시켜 술을 빚는 양조기술을 중국으로 전파시킬 만큼 젓갈이나 장류와 같은 발효음식의 제조기술이 뛰어나 당시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화제였는데, 290년경의 『삼국지(三國志)』 고구려전(高句麗全)에 ‘발효음식을 즐기는 민족’이라는 뜻으로 ‘자희선장양(自喜善藏釀)하는 나라’로 주목받았던 기록이 있다.
또한 백제인들은 맹독성 복어로 젓갈을 담가 먹었을 정도로 젓갈음식의 발효기술이 뛰어났다.
하지만 젓갈에 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문헌상 기록은 고려 17대왕 인종(仁宗, 1515~1545)의 명을 받아 김부식(金富軾, 1075~1151)이 1145년에 완성한 『삼국사기三國史記』신라본기新羅本紀에 기록되어 있다.
신라 신문왕이 8년(683년)에 제7관등官等 서열의 일길찬 김흠운의 작은 딸을 왕비로 맞을 때 ‘비단 15수레 / 쌀, 술, 기름, 꿀, 간장, 된장, 포, 젓갈 135수레 / 조(租) 150수레’의 예물 품목 중에 ‘장(醬)’과 함께 젓갈류를 뜻하는 ‘해’가 기록되어 있어, 당시 궁중의례음식으로 식용하던 귀한 젓갈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후, 고려시대로 접어들면서 젓갈은 우리 음식으로 정착되었다. 이는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고려에 와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고려도경高麗圖經』에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상용하던 음식이다”라는 내용만으로도 짐작 할 수 있다.
젓갈의 종류가 이미 150여 가지로 담수어, 해수어는 물론, 홍합, 전복, 조개류 등의 패류와 새우류, 게류 등의 갑각류까지 이용하여 젓갈을 만들었다. 젓갈을 담그는 방법 또한 소금에만 절이는 염해법(鹽法)과 젓갈 재료에 소금과 누룩, 술을 혼합한 독특한 방법의 어육장해법(魚肉醬法)이 있었고, 젓갈과, 절인 생선에 익힌 곡물과 채소를 함께 발효 숙성시키는 지금과 같은 식해食도 만들어 먹었던 기록이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의약서醫藥書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 실려 있다.
이처럼 우리의 음식문화를 상징하는 ‘젓갈’이 고려시대에 들어 특히 발달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고려 태조 때, 국가에서 직접 소금을 제조·판매하기 위해 설치한 도염원(都鹽院)이라는 소금 전매제 정책 때문이었다. 소금 가마솥이 612개소, 소금을 굽는 가구가 892가구가 있어, 백성들에게도 판매할 정도로 소금 생산이 가능해졌기 때문이었다.
주변국에서 소금을 들여와 궁중이나 권력층에서만 귀하고 특별하게 먹었던 삼국시대의 젓갈과 달리, 고려의 백성들도 다소 대중화된 음식으로 젓갈을 즐기게 된 것이다. ★우리 발효음식을 세계화시킨 조선시대 조선시대 들어, 한국인의 입맛을 ‘곰삭은 맛’으로 표현하는 젓갈이 특유의 발효미(醱酵味)와 풍미(風味)로 신분의 구분 없이 찬품으로 선호되면서 ‘밥도둑’이란 말까지 생겨났다.
이는 헌종(憲宗, 1827~1849) 때, 정학유(丁學游, 1786~1855)가 농사일과 철마다 알아두어야 할 풍속과 예의범절 등을 월령체(月令體)로 기록한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에 “새우젓을 넣은 계란찌개를 상에 내면 큰 가마의 밥이 부족했다.”는 내용에서 유래된 말이다.
젓갈의 종류는 대합젓, 토하젓, 조기젓, 홍합젓, 가자미젓, 밴댕이젓, 석화젓, 새우젓, 멸치젓, 청어젓, 자하젓, 게젓 등 150여 가지가 넘었으며, 제조법 또한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거나 사라진 방법도 있다. 짭조름한 맛을 내기위해 원료를 소금에만 절이는 염해법鹽法,
담백한 맛을 내기위해 소금, 누룩, 천초, 파, 술을 생선과 함께 넣어 삭히는 주국어법(酒麴魚法),
절인 생선과 조粟밥에 무, 소금, 고춧가루, 누룩을 버무려 담그는 식해젓갈법을 비롯해, 지금은 찾아 볼 수 없는 젓갈 제조법도 있었다.
고려시대 때부터 조선조 중기까지 식용되던 어육장해(魚肉醬)라고 하는 4월에 담그는 젓갈로 조선 숙종 때 실학자 홍만선이 농업과 일상생활에 관하여 쓴 『산림경제(山林經濟)』와 조선시대 식문화를 기록한 서유거의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우리 전통음식을 기록한 우리말 최초 요리서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
동양 최고의 여성백과사전으로서 빙허각 이씨(憑虛閣 李氏)가 쓴 『규합총서閨閤叢書』 등 조선시대 관선문헌과 민간문헌에 그 종류와 제조방법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한국인의 정서 반영하는 젓갈문화 어육장해는 젓갈 중에서 유일하게 땅속에 묻어 발효시키는 젓갈이다.
꾸덕꾸덕하게 말린 쇠고기, 꿩고기, 닭고기, 숭어, 도미를 비롯해, 날(生)전복, 홍합, 새우 등의 해물과 달걀, 생강, 파, 두부 등의 재료를 순서대로 켜켜이 담고, 메줏가루, 천초, 생강 등을 섞은 감천수(甘泉水)를 끓이고 소금을 풀어서 식힌 후, 항아리를 땅속에 묻고 1년을 삭혀야 먹을 수 있는 ‘기다림의 젓갈’이었다.
1600년대부터 먹기 시작한 게젓(게장) 또한 게, 재강(술지게미), 소금, 식초, 술을 섞어 담는 주해법(酒蟹法)과 함께
육선치법(肉膳治法)이라 하여 ‘게’를 기르는 법까지도 기록하고 있다.
이밖에도, 조밥에 절인 생선과 무채를 썰어 넣고 발효시켜 먹는 지금과 같은 식해를, 생선 대신 소의 내장이나 멧돼지 껍질에 후추와 섞은 젓갈도 만들어 먹었을 만큼 조선시대의 ‘젓갈’ 음식문화는
세계 음식문화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쉽지 않은 우리 선조들의 초감각적인 음식으로 발전해 왔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이 발효음식을 세계적인 음식으로 발전시켜 올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사계절이 확연하게 구분되는 지리적 위치와 지역적 기후 차이에 따라, 각 지방마다 고유하게 생산되는 식재료를 이용한 지역 음식문화의 발달과 손목만 돌리면서 서양의 요리사들 보다 2~3배 빠르게 칼로 얇고 정교하게 음식을 다듬어 낸 후, 맛 그리고 모양까지 살려내는 섬세한 ‘손기술’이며,
쌀을 주식으로 하는 곡물문화권 민족으로 부족할 수 있는 단백질과 칼슘 등의 성분을 섭취하면서 소화작용까지 하게 된다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곁들여져 발효음식의 발달을 가져왔다.
우리 한국인에게 있어 발효음식과 발효문화는 생리학적 영양의 효율성뿐만이 아니라. ‘썩음’과 ‘삭음’의 아슬아슬한 경계점에서 더하지도 덜하지 않을, 특유의 풍미를 우리 민족만의 독창적이고 고유한 감각의 천성(天性)이 발효시켜 낸 선조들의 지혜로운 전통음식인 것이다.
글. 황영철 (음식칼럼니스트) 사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이미지투데이 Zauberwelt - Edward Simon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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