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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과 메이와쿠(폐. 迷惑) - 갈.

아까돈보 2015. 8. 17. 14:07

 

 

일본인과 메이와쿠(迷惑)
2008년 도쿄 특파원으로 부임했을 때 일본 언론인에게 "일본인은 왜 이렇게 친절한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초등학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배우는 게 '폐(메이와쿠·迷惑) 끼치지 말라'이기 때문"이었다.
 
큰아이가 일본 초등학교 다닐 때 같은 반 아이가 수업 시간에 딴짓을 했다. 웬만해선 얼굴 붉히지 않는 일본 선생님들이지만 아이 하는 짓이 심했는지 불같이 화를 냈다.
선생님은 "네가 이러면 다른 아이들에게 폐 끼치는 게 되지 않느냐"고 했다. 아이는 결국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렇게 배운 아이들은 어른이 돼 '메이와쿠 않기'를 실천한다. 2011년 3·11 대지진 때 몇백m씩 줄 서서 구호물자를 배급받는 일본인에게 세계가 놀랐다. 2004년 고베 대지진 때 손자가 바위에 깔려 있는 상황에서도 할머니는 "폐 끼쳐 죄송하다"고 했다.
몇해 전 부산 화재로 일본인 관광객 일곱 명이 숨졌을 때도 부산을 찾은 유족들은 오히려 "미안하다"고 했다. 통곡도 폐 끼치는 것이어서 슬픔을 안으로 삭이는 것이다.
  [만물상] 일본인과 메이와쿠(迷惑)
▶이슬람 무장 단체 IS에 처형됐다는 일본인 유카와가 인질로 잡힌 게 작년 8월이었다. 일본 정부는 석 달 뒤 그 소식을 접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열흘 전 이집트에서 공개적으로 "IS와 싸우는 나라들에 2억달러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일본에선 아베의 도발적인 이 말이 처형을 불렀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런데도 유카와 아버지는 "국민에게 폐 끼쳐 죄송하다"고 했다. "정부 노고에 감사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2004년 일본인 다섯 명이 이라크에 들어갔다 무장 단체에 납치됐다. '자위대 철수'가 요구 조건이었다. 피랍자 가족은 정부에 요구를 들어달라고 했다. 당시 고이즈미 총리는 "올 들어서만 열세 번이나 이라크에 가지 말라 했는데…"라고 했다.
 
이후 일본에선 이런 피랍 사건에 대해 정부 책임을 묻지 않게 됐고 가족이 "폐 끼쳐서"라고 말하게 됐다. 2008년 아프가니스탄에 봉사 갔던 젊은이가 살해됐을 때 누구도 정부 탓을 하지 않고 가족이 사과했다.

▶메이와쿠는 다른 사람이 나 때문에 조금이라도 신경 쓰게 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미국 문화인류학자 루드 베네딕트는 이런 문화가 독특한 집단주의 사회를 만들었다고 썼다.
요즘 일본에선 '메이와쿠 않기에 집착하는 문화'가 일본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일만 터지면 남에게 삿대질하는 모습에 익숙해진 우리에겐 '메이와쿠'라며 머리 조아리는 일본인들이 여전히 놀랍다.
おんなの一生~汗の花~ /川中美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