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이 원록 선생의 시비
< 광 야 > 를 돌아본다.
당초 낙동강 강변에 있던 이 시비를
길을 넓힌다는 이유로 옮기게 되어
지금의 안동댐 민속경관지에 오게 되었다.
매일 소요유하는 산책길에 있어
가끔씩 들려 보곤 하지만
오늘은 춘천사는
일중 김 충현선생의 아끼던 제자
친구 황 재국교수의 부탁이 있어
디카를 들고 이곳에 들렸다.
일중 김 충현 탄생 100 주년 행사를 앞두고
자료를 정리하고 있는데
이 육사의 < 광야 > 시비에 그의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보내 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이곳을 아침 일찍 들렸다.
조 지훈으로 더 잘 알려진 조 동탁 시인이 비문을 짓고
전서를 전공으로 쓰시는 시암 배 길기 선생이
이색적으로 한글을 쓰시고
한글 고체를 잘 쓰시는 일중 김 충현 선생이
또 특별히 전액을 쓰셔서 두분 원로 대가분이
서로 바꾸어 쓰신것이 특별한 아주 보기 드문 시비이다.
자료를 살폈더니
1968 년 이곳에 옮겨 세울때 참석했던
시인 신 석초는 1970 년 시집 " 폭풍의 노래 " 에서
< 육사를 생각한다 > 라는 시에서
우리는 서울 장안에서 만나
꽃 사이에 술 마시며 놀았니라
지금 너만 어디메에 가
광야의 시를 읊느뇨.
내려다보는 동해 바다는
한 잔 물이어라
달 아래 피리 불어 여는 너
나라 위해 격한 말씀이 없네.
거의 매일 만나 오래동안 친하게 지냈던
신 석초 시인이 기억하는 건
말술을 마시고도 끄떡없던 친구,
술을 마시던 캄캄한 밤에 슬며시 사라지던 친구,
서로의 고향집을 방문하고 가족의 경사를 챙기던 친구 ,
나의 시를 읽어주고 세상에 소개해주던 친구 라며
친구를 그리워한 석초의 마음에 목이 메인다 적고 있다
원본 시집을 찾아보면 이 시의 끝에 작은 메모를 붙혀 두었는데
1968 년 5 월에 안동의 육사 시비를 세웠다는 메모가 있다고 한다.
아마 지금 이곳으로 옮겨온 시비를 준공하고
시인 신동집, 이효상,등과 안동을 다녀가며
마음이 많아 아렸던 모양이다.
그 사실을 알기라도 하는듯
햐이얀 목련은 목메어 지고 있고
시름모르는 벚꽃은 바람에 꽃비를 내리고 있다.
나는 여기를 떠나지 못하고
이리돌고 저리돌고
또다시 되돌아 돌면서
<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고. . .>
떠나질 못하고 있다.
꽃비는 참 곱게도 지는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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