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전라도, 황토땅 머언 길
소록도 길에 올랐다.
목포 가는길에
임 대사가 소록도를 못봤데서,
그리고 꼭 누군가
나를 기다리기라도 하는양
서둘러, 한 여섯시간이 걸렸나? 하여튼-
멀고 머언 그길을 달려 갔다.
이젠 뱃길이 아니라 새로놓인 커다란 다리를 건너
마치 천형의 소록도가 아니라
관광지 소풍이라도 가는듯
쉽게, 아주 쉽게 그렇게 간것이다.
문둥이라면서 그들은 세번을 죽었는데 말이다.
한센병으로 한번 죽고,
죽어서 시체해부로 또한번 죽고,
남은 시신은 불에 태워져 다시 한번 죽어서
그들은 세번씩 죽었다는데
우리는 마치 소풍이라도 가는듯
설레이고 벅찬 마음으로
그곳을 드나드는 것이다.
나는 오늘 여기에
그들이 감금당한 아픔을 그린 시 한편을 올린다.
살아서도 그들은 아이를 가질수 없었고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천형의 수형자로서만 살았었다.
강제로 정관수술을 당하고
손주를 보고싶다던 어머니 얼굴을 떠올렸을,
그는 가고, 이제 우리는 그곳을
안스러운 마음으로 돌아보고 있는것이다.
두편의 시는 지금 감금실과 검시,해부실에 걸려있다.
그러나 소록도 중앙공원이라 이름하는
그림같은 잘다듬어진 수목원에는
숫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노닐고 있다.
나는 요한바오로 2세 교황님이 다녀가신
소록도 큰성당과 직원 성당, 교육관을 돌아 보았다.
언제 마음 다스릴 일이 있으면
여기와서 피정도 하고
한하운 시인과 술이라도 한잔 해야겠다.
이번 남도 여행길에는 줄곧
이 소록도가 가슴에 아리게 박혀
맛있는 전라도 음식도
온전히 맛으로 소화 되지는 못할것 같다.
친구들도 여길 한번 다녀 가면 좋을텐데...
그리고 나서 나와 보리피리 시라도
합쳐서 불어 봤으면....
보 리 피 리
- 한 하운 -
보리 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 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 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人間事)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 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機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 닐리리.
한하운(韓何雲)
(1919.3.20∼1975.3.2)
시인. 본명 태영(泰英). 함남 함주 출생.
중국 1943년 베이징[北京]대학 농학원을 졸업한 후
함남·경기 도청 등에 근무하다가
나병의 재발로 사직하고 고향에서 치료하다가
1948년에 월남, ******************************
전라도 길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길. *******************************
손가락 한 마디
간밤에 얼어서 손가락이 한 마디
머리를 긁다가 땅 위에 떨어진다.
이 뼈 한 마디 살 한 점
옷깃을 찢어서 아깝게 싼다
하얀 붕대로 덧싸서 주머니에 넣어둔다.
날이 따스해지면
남산 어느 양지터를 가려서
깊이 깊이 땅 파고 묻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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