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윤선도가 살아 숨쉬고 있는
세연정 누마루에서 넋을 놓고 있다가
맞아, 나 혼자가 아니고 일행이 있었지 하면서
서둘러 나왔지만 길섶에 있는 정갈하고 소박한
부황마을 49-2 의 思求理 (?) 돌담을 보고선
그냥 지나칠수 없어 일행의 전화독촉을 무릅쓰고
골목안 부황72 번길이라 적힌 집앞에 서 주인을 찾았다.
허나 인기척은 없는데 나는 무엇에 끌리기라도 한냥
그 집 마당에 들어섰다.
골목도 그렇거니와 집 담장도 그렇고,
하물며 우물가 둘러쳐진 원장조차도
하나하나 올려 쌓은 돌담들은
주인의 마음과 정성을 들여다 본것같이
반갑고 정겹다.
돌담에 올려져 있는 늙은 호박덩이가 날 닮아 그런건지
아님, 어디하나 손가지않은데 없는 마당 곳곳에서
시집간 누나의 옷고름 눈물을 보아선지,
처마에 옹기종기 놓여진 고구마 형제들에서
여러 동생과 살아온 고생건너편 추억때문인지
무조건 정겹고 사랑스럽기만하다.
옛날 매일 꿈꾼 그 기억 저편의 동화속에
언제나 그림으로 등장하는 내 집을 만난듯
얼굴이 붉어지고 숨막혀
마치 첫사랑을 들켜 홧홧하게 달아오른 붉은 얼굴을 하고
주인없는 사구리( 思求理 )
( 나는 무작정 주소 49-2 에서 이집 이름을 이렇게 정했다)
뒤안을 이리돌고 저리돌면서
숨어 있는 누이를 찾듯 숨이 가빳다.
일행이 또 전화 했지만
나는 이 집을 떠날수가 없었다.
마치 내집인양, 아니 나그네로 떠돌다 지쳐 돌아온
고향집 마당에 선듯,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것만 같아
나는 제풀에 화들짝 놀라 골목길을 돌아 내려왔다.
우리 일행들은 그것도 모르고
매워진 바람밭에 세워둔게 화가 났는지
짜증에 얼굴이 붉어 있다.
미안했지만 변명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재촉에 시달려 넉넉히 보고 오지 못함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그 집 뿐 아니라
이 섬마을 이곳저곳은 모두가
돌담을 이리저리 종기종기 쌓아 둘러쳐진
정겨운 집에서 연기를 피워 올리며
섬마을이 모두 한가족인것처럼
그렇게 다정하게 이웃해 살아간다.
돌아나오는 꺽어진 길에서 만난
보길도 숙인 김해김씨 열녀비와 돌집은,
또다른 얘기를 나에게 들려준다.
그래 그랬겠지!
이런 사구리( 思求理 )집에서
그런 얘기가 없었다면
요즈음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에 매어달린
우리들이 무슨 재미로 산다냐...
오늘 나는 이 보길도 돌담길에서
보석같은 사연 하나를
가슴에 담아 간다.
정이 담북담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