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州李氏는 朝鮮 500年을 이끌어온 王家이므로 家門의 繁盛期(번성기)를 따로 記述할 必要가 없다. 全州李氏의 1百餘 派中 으뜸가는 名家는 密城君(밀성군).(琛(침)=世宗의 아들)派로써 6名의 政承과 3大 大提學을 輩出했으며, 德泉君(
덕천군).(厚生(후생)=定宗의 아들)派가 父子 大提學等 3名의 大提學과 領議政(영의정) 1名을 내어 密城君派(밀성군파)에 버금간다. 德泉君派(덕천군파)다음으로는 3名의 政承을 輩出한 廣平大君派(광평대군파),政承 2名을 輩出한 宣城君派(선성군파),政承 1名과 숱한 文臣과 武臣을 輩出한 孝寧大君派(효령대군파)等이 빼어나다. 全州李氏는 梧里政丞(오리정승)으로 많은 逸話를 남긴 仁祖때 領議政 李元翼(이원익),興宣大院君(흥선대원군) 李昰應(이하응),大韓民國 初代 大統領 李承晩(이승만),鐵驥(철기) 李範奭(이범석)將軍等 歷史의 한劃을 그었던 巨木들을 輩出하였다.1585年(宣祖18年) 李晬光(이수광)은 別詩文科(별시문과)에 及弟,1627年에 吏曺判書가 되었다.壬辰倭亂(임진왜란)을 前後하여 여러차례 使臣으로 明나라에 往來, 當時 明나라에 와있던 이탈리아 神父에게서"天主實義(천주실의)" "重友論(중우론)"을 얻어와 1614年(光海君6年) "芝峰類說(지봉유설)"을 刊行하여 우리나라 最初로 天主敎와 西洋 文物을 紹介(소개)함으로써 實學發展(실학발전)의 先驅者(선구자)가 되었고 詩文에도 能했으며 領議政에 追贈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