姓氏의 故鄕

玉川 趙氏(옥천조씨) (378).

아까돈보 2010. 6. 13. 00:47

 

 

 
玉川趙氏(옥천조씨,淳昌)
 

▣ 由來

 

 

始祖 : 趙璋(조장)


始祖(시조)趙璋(조장)은 高麗時代(고려시대)에 光祿大夫(광록대부)로 檢校大將軍(검교대장군), 門下侍中(문하시중)을 지냈다.
그의 曾孫(증손)趙元吉(조원길)이 恭讓王(공민왕)때 大匡輔國匡祿大夫(대광보국광록대부)로 檢校門下侍中(검교문하시중) 兼(겸) 典工判書(전공판서)로 玉川府院君(옥천부원군)에 封(봉)해졌기 때문에 그 後孫(후손)들이 玉川(옥천)(淳昌의 옛이름)을 本貫(본관)으로 하였다.

 

▣ 人物

 

 

高麗時代(고려시대)에 門下侍中平章事(문하시중평장사)를 지낸 趙旅(조여)를 비롯해 門下侍中(문하시중)을 지낸 趙元吉(조원길),典工判書(전공판서)를 지낸 趙瑛(조영), 典農寺副正(전농사부정)의 趙瑾(조근), 朝鮮朝(조선조)에 兵馬節度使(병마절도사)를 지낸 趙崇文(조숭문)등 여러官職者(관직자)를 輩出(배출)하면서 家門(가문)의 繁盛(번성)을 누렸다.

趙元吉(조원길)은 鄭夢周(정몽주), 薛長洙(설장수)와 함께 恭讓王(공민왕)을 擁立(옹립)한 功으로 1等功臣(일등공신)이되고 玉川府院君(옥천부원군)에 封(봉)해졌다. 그는 高麗(고려)가 亡(망)하자 淳昌(순창)에 들어가 다시 벼슬하지않고 끝까지 節義(절의)를 지켰는데 牧隱(목은) 李穡(이색) 等(등)과 함께 5隱(은)으로 불리었다. 그리고 趙瑛(조여) 亦是(역시)高麗(고려)가 亡(망)하자 淳昌(순창)에 隱居(은거)하며 벼슬하지 않았는데 太宗(태종)으로부터 父子三賢(부자삼현)이란 稱頌(칭송)을 들었다.父子三賢(부자삼현)이란 아버지 趙元吉(조원길),同生(동생) 趙允(조윤) 그리고 趙瑛(조영)을 말한다.

趙哲山(조철산)은 1456年端宗復位(단종복위)를 꾀하다가 流配(유배)되어 死刑(사형)되었는데 端宗(단종)의 廟庭(묘정)에 配享(배향)되었다.趙琛(조침)은151

5年 別試文科(별시문과)에 及第(급제)하여 翰林學士(한림학사), 成均館大司成(성균관대사성)을 지내고 藝文館提學(예문관제학) 義禁府事(의금부사)를 歷任(역임)하였으며,趙挺(조정)은 經學(경학)에 밝아 金海府事(김해부사)를 歷任(역임)하고 壬辰倭亂(임진왜란)이 일어나자 義士(의사)70餘名(여명)을 糾合(규합)하여 高敬命(고경명)과 合勢(합세)하여 錦山(금산)싸움에서 倭賊(왜적)을 無數(무수)히 죽이고 殉節(순절)하였다.
趙大春(조대춘)은 學文(학문)에 精通(정통)하여 行平原縣監(행평원현감)을 지낸 뒤 乙巳士禍(을사사화)로 隱居(은거)하여 亭子(정자)를 짓고 金麟厚(김인후), 白廣勳(백광훈) 等(등)과 더불어 詩(시)와 술로 交流(교류)를 즐겼다.

 

▣ 科擧及第者(朝鮮時代)

 

  趙碩球(조석구) (1620 庚申生) : 武科孝宗2年(1651) 別試 丙科
趙時一(조시일) (1606 丙午生) : 司馬試 仁祖11年(1633) 式年試 三等
等 모두 2名의 科擧及第者가 있다.
(武科 1명, 司馬試 1名)

▣ 世居地

 

  全南(전남) 昇州郡(승주군) 住巖面(주암면) 住巖里(주암리)를 비롯하여 13個里(개리)에 걸쳐 雲集(운집)하여 있는데 이 中에서도 住巖面(주암면) 住巖里(주암리)에 가장 많이 살고 있어 代表的(대표적) 集姓村(집성촌)으로 손꼽히고 있다.昇州郡(승주군)에는 玉川趙氏祖上(옥천조씨조상)들의 빛나는 業積(업적)을기리기 爲(위)한 各種(각종)書院(서원)과 墓(묘),旌閭(정여) 等(등)이 곳곳에 建立(건립)되어 있다.
谷城郡(곡성군) 三箕面(삼기면) 陽村里(양촌리),谷城郡(곡성군)梧谷面(오곡면)梧枝里(오지리), 谷城郡(곡성군) 谷城面(곡성면) 東山里(동산리) 等(등)에도 많은 數(수)의 玉川趙氏(옥천조씨)가 살고 있다.

 

▣ 本貫沿革

 

本貫所在地 : 全羅北道淳昌

 

玉川(옥천)은 淳昌(순창)의 다른 이름이다.
淳昌(순창)은 全羅北道(전라북도) 南(남)쪽 中央(중앙)에 位置(위치)하는 地名(지명)이다. 原來(원래) 百濟(백제)의 道實郡(도실군)인데, 新羅(신라)가 三國(삼국)을 統一(통일)한 後(후)757年(景德王16)淳化郡(순화군)으로고쳐 赤城縣(적성현)

·九皐縣(구고현)을 領縣(영현)으로 管轄(관할)하게 되었다.940年(高麗太宗23)淳

昌(순창:淳州)으로 이름을 고쳐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1018年(顯宗 9)南原(남원)의 屬縣(속현)으로 倂合(병합)되었다가 1175年(明宗 5)監務(감무)를 設置(설치)함으로써 獨立(독립)하였다.1314年(忠肅王1)에 國師(국사)인 丁午禪師(정오선사)의 故鄕(고향)이라 하여 郡(군)으로 昇格(승격)되어 朝鮮時代(조선시대)에도 이어졌다.朝鮮初(조선초)에서도 繼續(계속) 淳昌郡(순창군)으로 南原府(남원부)에 屬(속)하였다.1895年(高宗32)地方制度改正(지방제도개정)으로 南原府(남원부)에서 獨立(독립)하였고,1896年 道制實施(도제실시)로 全羅北道(전라북도)에 所屬(소속)되었다.1914年郡面廢合(군면폐합)으로 任實郡(임실군)과 南原郡의 一部가 編入되었다.1935年 龜巖面(구암면)과 茂林面(무림면)을 統合(통합)하여 龜林面(구림면)으로 改編(개편),11個面(개면)이 되었다.1979年 淳昌面(순창면)이 邑(읍)으로 昇格(승격)되었다.

 

▣ 人口數

 

 

統計廳(통계청)의 人口調査(인구조사)에 依(의)하면 玉川趙氏(옥천조씨)는
1985年에는 摠 10,819家口 48,637名,
2000年에는 摠 15,346家口 49,847名이 있는 것으로 調査(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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