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조선)世祖(세조)때 1465年 李孟智(이맹지)는 文科(문과)에 及第(급제)해 司憲府執議(사헌부집의)를 歷任(역임)燕山君(연산군)때 靖亂(정란)으로 龍川(용천)에 流配(유배)되어 그後(후)그곳에 世居(세거)하면서 많은 後進(후진)을 養成(양성)하였다. 中宗(중종)때 中和府使(중추부사)를 지낸 李謙(이겸)은 己卯士禍(기묘사화)때 趙光祖(조광조)를 辯護(변호)하다 罷職(파직)되었으나,英祖(영조)때 吏曺參議(이조참의)에 追贈(추증)되었다. 宣祖(선조)때 李之詩(이지시)는 武科(무과)에 壯元及第(장원급제)하여 訓鍊院正(훈련원정)이 되었다가 文翰(문한)에 能(능)하므로 東班職(동반직)에 專任(전임), 注書(주서)가 되었다. 1583年에는 利城縣監(이성현감)으로 女眞族(여진족)의 侵入(침입)을
을 擊退(격퇴)하고 壬辰倭亂(임진왜란)이 일어나자 羅州牧使(나주목사) 李慶祿(이경록)의 助防將(조방장)이 되어 龍仁(용인)에서 싸우다 戰死(전사)했다.後(후)에 兵曺判書(병조판서)에 追贈(추증)되고 泰仁(태인)의 慕忠祠(모충사)에 祭享(제향)되었다.
朝鮮時代(조선시대) 義兵將(의병장) 李立(이립)은 武科(무과)에 及第(급제)해 內禁衛(내금위)에 補職(보직)되고 1592年 壬辰倭亂(임진왜란)때 素砂(소사)싸움에서 功(공)을 세워 訓練判官(훈련판관)이 되어 扈聖原從功臣(호성원종공신)이 되었다. 1627年 丁卯胡亂(정묘호란)때 安浚(안준), 金佑(김우),安宗祿(안종록)等(등)과 함께 義兵(의병)을 募集(모집), 龍骨山城(용골산성)에 들어가 張士俊(장사준)을 죽이고 오랑캐를 크게무찔러 戰功(전공)을 세워 都督(도독) 毛文龍(모문룡)의 上疏(상소)로 明(명)나라로부터 賞品(상품)을 받았다.이어 麟山鎭僉節制使(인산진첨절제사)가 되어 大鷄島(대계도)에서 布陣(포진)
하고 있다가 病死(병사)했다.兵曺參判(병조참판)에 追贈(추증)되고,旌門(정문)이 세워졌으며,1736年에 安州(안주)忠愍祠(충민사)에 祭享(제향)되었다. |